양말목, 폐섬유의 재발견
한국은 세계 5위의 헌 옷 수출국이다. 의류를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이른바 ‘패스트 패션’이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의류 폐기물도 급증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섬유는 재활용이 쉽지 않아 대부분 쓰레기로 배출돼 심각한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섬유 폐기물은 매립이나 소각 처리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온실가스 및 탄소를 배출해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한다.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에서 나오는 폐섬유는 일일 평균 1,000t이 훌쩍 넘는다. 이에 따른 연간 탄소 배출량은 무려 120억t에 이른다.
폐섬유는 썩지 않고 미세플라스틱이 되어 우리 곁에 돌아온다.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자연에 유출되는 미세플라스틱 35%가 섬유 제품에서 나온다. 몇 년 전만 해도 양말목은 섬유 폐기물로 배출됐다. 양말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가락 부분을 박음질할 때 약간의 천이 링 모양으로 떨어져 나오는데, 이 자투리 천이 바로 양말목이다. 발목 부분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발가락이 닿는 아랫부분이다.
이렇게 버려지는 양말목에 가치를 더한 새활용 공예가 해를 거듭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내는 가치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새활용은 이제 우리 일상에 스며든 새로운 삶의 방식이 되어 가고 있다. 단순히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가치와 디자인을 가미하고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버려지는 폐기물에 특별한 가치를 더하기 위해 양말목 공예에 도전한 이들이 있다. 한국환경공단 직원 5명이 양말목 공예 전문 공방을 찾았다.
처음 접한 양말목 세상
“이렇게 다양한 색상의 양말이 존재하는 줄 몰랐어요.”
50여 가지가 넘는 색상의 알록달록한 양말목에 모두의 눈길이 쏠린다. 5명이 모인 곳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양말목 공예 공방 희아뜰리에. 양말목은 언뜻 보면 동그란 고무줄과 비슷해 보이는데, 성인의 손목을 여유롭게 감쌀 정도의 지름 크기다. 공방의 권은희 대표는 양말목 공예가 본격화된 것은 2018년 무렵이라고 말한다.
“양말목 공예가 활성화되기 전에는 공장 인근에 사시는 동네 어르신들이 버려지는 자재를 얻어 가방도 짜고 방석도 만드셨다고 해요. 바로 양말목 공예의 시초인 셈이지요. 처음에는 공장에서 버려지는 양말목을 무료로 얻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 양말 공장에서 따로 판매하고 있어요. 양말을 만들 때 나오는 자투리다 보니 원하는 색상을 따로 주문하기는 어려워 색상별로 분류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양말목 공예는 처음에는 주로 평면으로 된 방석이나 컵 받침 등을 만든다. 이후에는 바구니나 가방, 인형 같은 입체 생활 소품에도 도전해 볼 수 있다. 초보자 기준 소요 시간은 약 2시간 정도로, 뜨개질을 배워 코의 개념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쉽게 배울 수 있다.
직원들은 양말목을 활용해 방석 만들기에 도전했다. 양말목으로 만드는 방석은 사각형과 원형 두 가지 중 선택할 수 있는데, 탄소중립지원처 윤정호 대리와 장보은 주임은 사각형 방석을, 디지털혁신처 황지환 주임과 국민소통실 김지혜 주임, 자원순환관리처 배지원 주임은 원형 방석 만들기에 도전했다.
페트병 뚜껑을 녹여 열쇠고리를 만드는 새활용 체험을 해본 적이 있다는 장보은 주임은 “양말을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양의 폐섬유가 발생하는지 몰랐다”라며 놀라워했고, 배지원 주임은 “예전에 라탄 바구니 공예를 해본 적이 있다. 요즘 원데이클래스가 많은데, 이렇게 공예 체험을 하면서 새활용에도 함께 동참할 수 있어 더 의미가 큰 것 같다”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양말목 공예의 장점은
양말목 방석 만들기의 시작은 바로 마음에 드는 색상을 고르는 일이다. 다채로운 색상의 양말목 중 어떤 색을 고르면 좋을지 직원들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잠겼다. 깔끔한 단색의 조합부터 12가지가 넘는 다양한 색상의 컬래버레이션까지, 개개인의 취향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권은희 대표는 “초보자의 경우 너무 똑같은 색상으로 작업을 하면 단의 순서를 헷갈릴 수 있는 만큼 적절히 색상을 섞는 것이 좋다”라고 귀띔했다.
양말목 공예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어 새활용에 관심 있는 초심자가 도전하기에 좋다. 코바늘이나 가위, 테이프 등 타 공예에서 사용되는 준비물이 필요 없다. 고리와 고리로 연결되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100% 손가락으로만 작업이 이뤄진다.
또한 바쁜 일상 속에서 단순함의 즐거움을 찾는 현대인에게는 간단하면서 반복적인 양말목 공예가 잡념을 사라지게 해주는 효과도 있어 인기다. 공예 결과물에 대한 보람까지 느낄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다조’다.
처음 규칙만 잘 이해하면 만드는 과정도 간단하다. 맨 먼저 양말목 하나를 숫자 8 모양으로 만든 후 고리를 끼듯 다른 양말목 하나를 이으면 된다. 사각형 방석의 경우 가로와 세로 각각 20개의 고리로 만들어진다. 첫 고리를 시작으로 같은 방식으로 확장해 나가면 되는데, 주의해야 할 점은 고리의 수를 잘 기억해야 한다는 것. 뒤늦게 고리 수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면 애써 작업한 고리를 다시 풀어 재작업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단을 마칠 때마다 확인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한 땀 한 땀 마음을 담아
어느새 공방에는 고리를 엮으며 숫자를 세는 소리부터 컬러 조합을 놓고 고민하는 소리까지, 세상에 하나뿐인 양말목 방석을 완성하기 위한 뜨거운 열정이 피어올랐다.
특히 방석을 네 살 딸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윤정호 대리는 공예 체험이 처음임에도, 양말목의 색상을 이용해 하트 문양을 넣는 과감한 도전으로 모두의 감탄을 자아냈다. 딸이 좋아할 만한 핑크 계열의 색상을 고르고 아빠의 따뜻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한 땀 한 땀 방석을 완성해갔다.
양말목 공예에서 또 하나 주의해야 할 점은 힘 조절이다. 자칫 잘못하면 반듯한 평면이 아닌 방석 곳곳에 굴곡 아닌 굴곡이 생겨날 수 있다. 권은희 대표는 “양말을 오래 신으면 늘어나듯이, 양말목도 힘을 많이 주면 늘어난다. 중간중간 힘 조절이 다를 경우 대칭이 안 맞거나 굴곡이 생길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원리에 따라, 방석은 사용할수록 점점 늘어나게 된다. 방석을 의자 면적보다 더 작게 만드는 이유다.
고리와 고리의 연결이 반복되면서 원형과 사각형 모양이 점차 방석 크기로 갖춰 갔다. 마무리로는 고리를 당겨 옆 고리에 넣어주면 완성이다. 작업 마지막을 앞두고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한 색상 고르기로 또다시 직원들이 분주해졌다. 가장 다양한 컬러를 가미해 방석을 만든 황지환 주임은 고심 끝에 검은색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고, 동료들로부터 “시중에 판매하는 방석 같다”라는 극찬을 들은 배지원 주임은 푸른 빛깔로 전체 톤을 맞춰가며 남다른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또한 색상 선택에 깊은 고민을 거듭하던 김지혜 주임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1등으로 방석을 완성, 자타공인 ‘신의 손’임을 증명하며 활짝 웃었다.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까닭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양말목 공예가 탄생했지만, 사람들이 찾는 빈도가 늘어나면서 인위적으로 양말목을 만들어 판매하는 업체도 생겨났다. 이른바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 제품이다. ‘가짜 양말목’을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마감 처리가 매우 깔끔해 육안으로도 금세 구분할 수 있다. 폐기물로 발생하는 양말목의 경우는 올이 풀려 있거나 잘린 선이 일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판매를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양말목의 경우 마감이 깔끔할뿐더러 다양한 색상을 내세우면서 소비자를 현혹한다.
이 때문에 새활용이라는 가치에 반하는 소비가 될 수 있는 만큼 양말목 구입 시 꼼꼼하게 확인하고 구매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활용과 새활용에 관심을 갖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그 틈새를 파고든 생산 업체들로 인해 또 다른 폐기물이 양산되지 않도록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해진 요즘이다. 권은희 대표는 “인위적으로 만들어 생산하는 양말목을 ‘편직 양말목’ 이라 부르는데, 원하는 색상을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새활용이라는 가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양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산업 폐기물로 만들어 더 의미가 있는 양말목 방석. 평소 환경 보호 실천이 여의치 않았다면, 쉽고 재밌게 배울 수 있는 공예 체험으로 첫발을 디뎌보는 것은 어떨까? 지구의 온도는 낮추고 삶의 온기는 높이는, 더없이 소중한 순간을 간직해보자.
<자연가까이 사람가까이> 독자들에게 한마디
윤정호 대리 : 딸에게 방석을 선물하면서 자연스럽게 새활용의 가치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이서야, 아빠가 열심히 만들었다! 조금 더 크면 함께 체험하러 오자!
장보은 주임 : 양말을 만들면서 이렇게 많은 천이 버려지는 줄 몰랐어요. 이번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황지환 주임 : 공예 체험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쉬워서 금세 재미있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좌푯값을 찍은 다음 한층 한층 규칙적이게 쌓아 올라가는 점이 제가 하는 전산 업무와 비슷했답니다.
김지혜 주임 : 재활용품을 활용한 가정용 인테리어 소품이 다양한데, 양말목 또한 좋은 아이템이 될 것 같아요. 완성한 방석은 남편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의미 있는 선물로 오래오래 기억되지 않을까요?
배지원 주임 : 한 땀 한 땀 열심히 만들고 나니 보람이 크게 느껴집니다. 사무실에서 사용하며 주위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싶어요. 재미도 있고 버려지는 자투리를 이용해 일상의 소품을 만들 수 있어 일석이조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