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의 풍경을 캔버스에 담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던 중 가까운 산에 올랐어요.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답답했던 마음이 막 풀리던 그때, 산 정상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며 괜스레 화가 나더군요. 먹다 버린 음식과 깨진 술병이 널브러져 있는 걸 보며 자연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자연을 소재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김강은 대표. 미대를 졸업했지만 ‘산’을 전공한다고 할 만큼 산에 대한 애착이 깊다. 미술 도구를 챙겨 눈앞의 풍경을 드로잉할 때 묘한 행복을 느낀다는 그에게 산은 가장 소중한 친구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어요. 전에는 느끼지 못한 자존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진로 문제가 풀리지 않아 방황하는 저에게 산은 다시금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주었죠.”
우리나라의 웬만한 산을 섭렵한 그는 해외로 발을 돌렸다. 마치 도장 깨기 하듯 유럽과 남미의 여러 산을 찾아다니며 자연을 캔버스에 담은 그는 인생 최고의 가치와 행복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외국의 명산에 올라 평생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을 쌓은 그가 충격을 받은 것은 귀국 후 우리나라의 산을 찾았을 때였다.
“외국에서 산행했던 감격을 다시 누리고 싶어 아버지랑 지리산 여행을 갔어요. 하지만 제 눈앞에 보인 건 아름다운 자연이 아닌 쓰레기였죠. 깨진 술병이며 쓰레기 더미가 산장 주변에 가득한 걸 보곤 너무나 안타까워서 아버지랑 쓰레기를 주우며 내려왔던 기억이 나요.”
김강은 대표는 쓰레기로 더럽혀진 산의 모습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짧은 글과 사진 몇 장이지만 많은 이가 ‘좋아요’를 누르며 그와 공감했다. 내친김에 그는 산에서 쓰레기를 줍자는 제안을 했고 그의 뜻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함께 첫 모임을 가졌다.
“SNS로 맺어진 여섯 명과 함께 청계산에 올랐어요. 등산이 취미인 중년, 초등학생 아들의 손을 잡고 온 아버지 그리고 제 또래의 사람들이 모여 쓰레기를 주었죠. 산에는 먹다 버린 과일, 김밥, 나무젓가락이 여기저기 쌓여 있었어요. 정말 죄책감 없이 쓰레기를 마구 버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주워야 할 쓰레기가 너무 많아 오가는 등산객에게 비닐봉투를 얻어야 할 정도였다니까요.”
정크아트로 환경을 보호하는 사람들
1년 동안 수도권의 산을 찾아 쓰레기를 줍는 동안 회원들은 늘어갔다. 운영진을 뽑고 규칙도 만들고 이름도 지었으니, 김강은 대표의 ‘클린하이커스’는 그렇게 탄생했다. SNS를 통해 클린하이커스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지자체와 공공기관, 시민단체에서도 협업 요청이 이어지며 김강은 대표는 바쁜 나날을 이어갔다.
“여러 지역을 방문하며 환경 캠페인을 벌였어요. 하지만 쓰레기를 줍는 것만으로 쓰레기를 줄일 수 없다는 것을 곧 깨달았어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으면서도 재미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해 고민했고 정크아트 퍼포먼스를 생각하게 됐어요.”
김강은 대표는 버려진 쓰레기를 예쁜 사슴으로, 귀여운 반달곰으로 만들며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었다. 사람들은 쓰레기로 예술작품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지게 됐고 ‘클린하이커스’ 하면 ‘정크아트’를 떠올릴 정도로 김강은 대표는 유명한 환경활동가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
자연이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클린하이커스 회원들이 산에서 주운 쓰레기는 정말 기상천외한 것들이었다. 50년도 더 된 라면 봉투를 비롯해 커다란 폐타이어, 속옷,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별별 쓰레기가 모아졌고, 회원들은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무엇을 만들지 결정해 설치미술 퍼포먼스를 즉석에서 펼쳤다. 그렇게 2019년부터 전국의 산을 돌며 만든 정크아트는 100여 점이 훌쩍 넘는다.
“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쓰레기가 일회용 나무젓가락이에요. 사람들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무젓가락엔 방부제가 많아 6개월이 지나면 생태계에 매우 해롭다고 해요. 그런 나무젓가락이나 물티슈 같은 쓰레기를 모아 괴물 같은 형상을 만들었고 ‘몬스터의 탄생’이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작품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이 감동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이 작품은 지난해 갤러리에서 전시도 할 만큼 아주 인기가 많았답니다.”
진로 문제로 방황하던 시절 우연히 찾은 작은 산에서 김강은 대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았다. 마치 나침반을 발견한 듯 자신의 길을 찾아 소명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이 아름답고도 멋져 보인다.
“자연을 사랑하는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환경공단이 전문적인 영역에서 환경을 보호하듯 저 역시 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대중과 소통하며 열심히 제 할 일을 다할 것입니다. 흔한 말로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연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 노력할 거예요. 그게 진정 산을 사랑하는 방법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