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녹색 평론
편리함이 주는 경고,
친절한 친환경은 없다
친환경의 핵심은 ‘불편함’을 견디는 일이다.
매일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일회용품 대신 다회용품으로 바꾸고, 플라스틱 대신 자연으로 돌아가는 성분으로 고르는 것들이다.
지구를 위해 편리함을 뿌리칠 용기가 필요한 때이다.
글. 데일리안 장정욱 기자
일회용품 사용 규제 무기한 보류
환경부를 출입하는 기자로서 지난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일회용품 사용 규제 정책을 무기한 보류한 것이다. 환경부는 시장 상황에 맞게 ‘자율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으나, 제도 철폐로 해석하는 게 사실에 더 가깝다.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일회용품 품목별 특성을 고려해 규제를 합리화하고 일회용품 관리 정책을 과태료 부과에서 자발적 참여에 기반하는 지원 정책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다.
당시 발표자로 나선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이번 방안은 그동안 계도로 운영해 온 품목을 대상으로 소상공인 부담을 완화하고, 현장 혼란을 최소화하면서, 일회용품 사용도 줄이기 위해 마련했다”라고 설명했다.
애초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24일부터 편의점과 커피·음식점 등에서 사용하는 비닐봉지,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접시, 나무젓가락, 이쑤시개 등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할 예정이었다. 2022년 제도 도입을 추진했으나 현장 혼란을 우려해 지난 1년간 계도기간을 가진 후다.
환경부가 1년간 계도기간을 가진 정책을 사실상 철회했다는 것을 두고 ‘친환경 정책의 퇴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계도기간 제기된 문제에 관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제도를 백지화했기 때문에 결과만 놓고 보면 이러한 비판을 틀렸다고 반박하기 힘들다.
플라스틱 폐기물 연간 1,193만 2,000t
그린피스와 장용철 충남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 연구팀이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인당 연간 일회용 플라스틱 소비량은 플라스틱 컵 102개, 생수 페트병 109개, 일회용 비닐봉지 533개를 사용했다. 2021년에만 총 1,193만 2,000t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발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심각했던 터라 배달음식 주문이 늘면서 일회용품 사용도 예년보다 늘었다. 이 때문에 연간 1인당 568개의 일회용 플라스틱 배달 용기를 추가로 소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인구를 약 5,200만 명이라 할 때, 국민이 한 해 소비하는 일회용 생수 페트(pet)병은 56억 개에 달한다. 생수병을 옆으로 나란히 세우면 지구를 14바퀴 돌 수 있는 길이다. 플라스틱 컵 역시 연간 53억 개를 소비한다. 이를 높이 쌓으면 지구에서 달 사이 거리의 1.5배에 달한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량도 살펴봐야 한다. 플라스틱 빨대는 환경부가 추진한 일회용품 사용 규제 핵심 품목이다. 환경부가 2019년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플라스틱 일회용 빨대 연간 사용량은 24억 개에 이른다. 음료를 젓는 용도로 쓰는 작은 플라스틱 빨대(막대) 또한 2억 개를 쓴다.
‘편의’ 위해 만든 일회용품, 지구엔 ‘위기’
일회용품 사용 규제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일회용품은 편리함을 찾는 사람들의 본능적인 욕구 때문에 만들어졌다. 산업과 기술이 발전하면서 더욱 쉽고 편한 것을 찾는 소비자 바람에 맞춰 개발한 게 일회용품이다. 가볍고 튼튼하면서, 값싼 제품을 대량 생산해 쉽게 소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생산 목적에 맞게 소비자들은 이런 편리함에 길들었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1950년대 연간 150만t에 불과하던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2021년 3억 9,000만t으로 늘었다. 약 70년 사이 260배 많아졌다. 산업 발전 속도를 훨씬 능가하는 속도로 일회용품 사용이 증가했다.
일회용품, 특히 플라스틱 사용이 급증하는 동안 지구는 인류가 피부로 느낄 만큼 병들어갔다. ‘기후 위기’란 단어는 견디기 힘든 더위와 극한의 가뭄, 전례 없는 파괴력을 지닌 태풍 등으로 현실이 됐다. 세계 주요국들은 더 늦기 전에 지구를 살리기 위한 실천에 나서자고 입을 모으고 있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불편을 감내할 용기다. 편리함이 일회용품을 만들어냈다면, 일회용품을 줄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불편함을 각오해야 한다. 일회용품이 일상 깊이 스며들수록 불편은 더 클 것이다.
이미 편리함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플라스틱 빨대에 길든 우리는 입술 끝에 닿는 종이 빨대의 질감조차 못 견디는 게 현실이다.
높은 국민 의식, 일회용 퇴출 불가능 아냐
낙담할 필요는 없다. 우리 국민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높은 환경 의식을 가졌다. 환경부 조사에서 10명 중 9명은 가격이 비싸더라도 친환경 제품을 구매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통계청 전국폐기물통계조사에 따르면 2022년 기준 국민 88% 이상이 분리수거에 동참하고 있다.
친환경에 대한 높은 국민 의식으로 비닐봉지 대신 장바구니와 에코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늘고 있다. 에코백에는 일회용 컵을 대신할 텀블러를 챙겨 다닌다. 배달음식을 시키더라도 일회용 수저 사용을 줄이고, 다회용기 사용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늘어나는 중이다.
이들은 모두 친환경을 위해 불편을 감내하고 있다. 최소한의 불편마저 없는 친환경은 불가능하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환경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될 수밖에 없다. 익숙해진 불편은 더 이상 불편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면 조금 빨리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친절한 친환경’은 없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