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 그린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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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과일은 최고의 식재료
제철 과일로 떡 벌어지는 한상을!
왜 가을만 되면 입이 쉬질 않을까. 입맛 똑 떨어진 여름엔 사실 기대도 했다.
드디어 다이어트 성공인 건가.
그러나 서늘한 가을, 거짓말처럼 위장이 요동을 친다. 천고마비의 계절, 언제 적 속담인가.
인간의 의지로 어떻게 해볼 식욕이 아니다. 이왕 먹을 거면, 먹을 수밖에 없다면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건강한 것만 먹고 싶다.
과일로 만든 음식이 궁금해진다.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음식으로 삼시세끼 챙겨 먹는다면 피부는 속광으로 반짝일 테고, 식탐의 죄책감도 덜 수 있겠지.
제철 과일로 맛있고, 독창적인 음식을 만들고 싶다면 도해 보자! 섬세하고, 사려 깊은 당신의 식욕을 위한 특별 쿠킹 클래스.
이대로 따라 하면 가을 식욕은 적이 아니라 친구가 된다.
글. 박민우 작가
감을 말리지 말고, 구우라고?
맛의 신세계 구운 감
누가 뭐래도 가을을 대표하는 과일은 감이 아닐까. 감을 오븐에 굽는다면? 구운 감은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혁명적이다. 달걀을 세우기 위해서는 깨트려야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으나, 그 누구도 몰랐던 지혜를 탐험가 콜럼버스가 발견했다.
구운 감 역시 마찬가지다. 감이 더 맛있어서 무엇 하리. 이미 충분히 달콤한 감을 굳이 요리로 먹을 필요성을 못 느꼈더랬다. 에어프라이어에 감을 넣어 본 누군가에 의해 획기적인 발견이 이루어진다. 단단한 감의 꼭지를 도려내고, 칼집을 여덟 방향으로 낸다. 에어프라이어 온도는 200도로 맞춰 놓고 10분에서 15분가량 돌린다. 감의 당도는 놀랄 만큼 올라가고, 식감은 홍시처럼 말랑해진다. 그 어떤 디저트도 이 맛을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욕심을 더 내 보고 싶다면 구운 감에 버터나 크림치즈를 올려 보도록. 버터는 소금기가 있는 가염버터여야 한다. 단짠단짠의 정석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감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은 열을 가할수록 체내 흡수가 쉬워진다. 치즈나 버터와 곁들여 먹으면 기름에 잘 녹는 베타카로틴 성분은 더욱더 흡수가 잘된다. 이젠 구운 감이 없었던 가을로는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왕의 깍두기
배깍두기 납시오
추석 이후 갑자기 과일이 많아져 처치 곤란일 때가 있다. 배깍두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배가 조금 물러도 달지 않아도, 젓갈과 고춧가루 양념이 더해지면 표도 안 난다. 단점도 있다. 물이 좀 많이 생기는 편이라 즉시 만들어 먹는 게 가장 좋다. 양념도 간단하다. 따로 소금에 재는 수고도 필요 없다. 큼직한 배 하나에 고춧가루 두 스푼, 까나리액젓 한 스푼이면 된다. 이보다 간단한 요리가 세상에 또 있을까? 먼저 고춧가루로 깍둑썰기한 배에 색을 입혀 준다. 까나리액젓 한 스푼을 넣으면 끝. 깨와 대파, 청양 고추가 들어가면 더 좋지만 없어도 맛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사과와 배를 반반씩 섞으면 맛 좋은 사과배 깍두기가 된다. 배와 사과의 식감이 다르기 때문에 다른 식감, 다른 맛을 동시에 즐기는 게 매력.
양을 늘리고 싶을 땐 숙김치를 추천한다. 숙김치는 한 번 열로 익힌 김치를 뜻한다. 배를 익히라는 게 아니고, 무를 익히라는 말씀. 무를 삶으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소화 기능이 떨어지는 노인, 아이들에게 좋은 게 바로 숙김치다. 오래 끓이면 물러지니, 데치는 수준으로 삶아서 찬물에 헹군다. 삶은 무, 배를 양념과 함께 섞어 주면 왕이 먹었을 법한 고귀한 김치가 완성된다.
잼 말고 처트니,
무화과 처트니를 만들어 보자
처트니는 인도의 잼이다. 일반적인 잼과 처트니의 차이라면 다양한 향신료와 식초, 혹은 라임 주스를 첨가한다는 것. 인류가 먹기 시작한 최초의 과일 중 하나가 무화과다. 구약에서 선악과를 먹고 수치심을 느낀 아담과 이브가 입은 옷이 무화과 잎으로 만든 것이다. 무화과는 꽃이 없는 열매라는 뜻이다. 꽃이 없는 열매도 있어? 놀랍게도 무화과는 우리가 먹는 속이 바로 꽃이다. 껍질로 보이는 부분이 꽃받침.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우리나라 무화과의 75%가 재배된다. 처트니의 장점은 설탕이 일반적인 잼보다 적게 들어간다는 것이다. 잼은 과일과 설탕의 비율이 1 대 1, 혹은 2 대 1이지만 처트니는 3 대 1 정도면 충분하다. 설탕은 더 줄여도 된다. 계피와 레몬즙(식초로 대체 가능)은 꼭 들어가는 게 좋으며, 생강, 넛맥, 육두구 등은 있으면 넣고, 없으면 굳이 사지 않아도 된다. 무화과 360g에 사과 반 개, 설탕 120g, 레몬즙 4 큰술과 물 2 큰술을 넣고 나머지 재료와 함께 끓인다. 중불로 한 시간 정도는 졸여야, 잼처럼 되직한 점성이 나온다. 무화과 처트니를 다과와 곁들이면, 최고의 티타임이 된다. 요즘 핫한 샌드위치 전문점에선 무화과 처트니를 스프레드로 쓴다. 익숙한 듯한데 특별한 맛의 샌드위치를 즐길 수 있다.
사과 비빔면 한 그릇에
사과 피자 한 조각, 동서양의 황금 조합
사과는 요리 좀 한다는 사람에겐 없어서는 안 되는 보물. 여기에 사과를 넣었다고? 익숙한 메뉴에 사과가 들어가는 경우는 흔하다. 바몬드 카레는 사과가 핵심 성분이다. 소문난 대구탕집주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사과와 양파를 디포리와 함께 넣어서 진한 육수를 뽑는다고 한다. 말이 나온 김에 정말 간단한 사과 비빔국수를 만들어 보자. 양념은 비율이 중요하다. 숟가락이나 종이컵으로 계량하며 양념을 만들면 편리하다. 고추장, 사과, 참기름, 깨소금, 다진 양파 비율은 2:3:1:1:1. 여기에 설탕은 취향껏 가감한다. 마늘을 넣으면 깊은 맛이 나고, 마늘을 생략하면 좀 더 깔끔한 맛이 난다. 잘 익은 김치를 얹으면 김치 비빔국수, 열무를 올리면 열무김치 비빔국수가 된다.
비빔국수와 함께 먹기 좋은 메뉴를 하나 더 소개한다. 일명 사과 피자. 보통 피자는 토마토 페이스트가 들어간다. 토마토 페이스트 대신 사과 조림이 들어간다면? 사과와 설탕을 2 대 1 분량으로 넣고, 레몬과 계피를 조금 추가해 뭉근하게 끓인다. 걸쭉해지면 그게 사과 조림이다. 사과 조림을 밀가루 도우에 펴 바르고, 모차렐라 치즈와 각종 토핑 재료를 올려서 구우면 사과 피자 완성. 아이들 입이 귀에 걸리는 걸 보게 될 것이다. 간단한 요리지만, 파티 음식 부럽지 않은 푸짐하고, 화려하고, 예쁘기까지 한 메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