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에서 되찾은 인생의 봄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의 하루는 ‘자연의 시간표’대로 흘러간다. 아침엔 강물에서 피어오르는 하얀 안개가, 한낮엔 햇살이 만들어준 은빛 물결이, 저녁엔 앞산 봉우리를 물들이는 주황빛 노을이, 비슷비슷한 일상을 알록달록 물들인다. 봄엔 온갖 꽃들이 눈앞에서 피고, 가을엔 갖가지 나무들이 코앞에서 물든다. 10여 년 전 남양주시 와부읍 팔당리에, 창밖이 그 자체로 풍경화인 이 카페를 오픈하면서다. 숨 가쁘게 달려가던 현대인이 문득 멈춰 자연을 바라보기를, 이곳에서 얻은 잠깐의 ‘쉼표’로 오래 잊은 ‘느낌표’를 되찾게 되기를…. 그 소망이 그를 이끌고 간다. 아무리 퍼줘도 결코 줄어들지 않는 아름다움을, 그는 오늘도 신나게 나누며 산다.
명소에 얽힌 일화는 그의 아버지에게도 있다. 섬진강을 낀 그의 고향 집은 여름에 큰비가 올 때마다 물에 잠길 것을 걱정해야 했다. 천생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 문제를 해결했다. 홍수를 막기 위해 구례 섬진강 변 3km에 손수 대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 길이 지금 ‘핫 플레이스’가 됐다. 자연을 벗 삼을 줄 아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자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한다는 것“매일 카페에 나와 주변을 청소해요. 쓰레기를 줍고 마당을 쓰는 것이 ‘골프 18홀’을 도는 것보다 체력 단련도 되고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앞이 한강이잖아요. 쓰레기를 치우지 않은 상태에서 비가 내리면, 그것들이 고스란히 강으로 흘러가버려요. 결국엔 바다로 갈 거고요. 자기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이 환경을 생각하는 첫걸음인 것 같아요.”
“신문을 많이 읽다 보니 환경에 대한 관심도 저절로 커지더라고요. 환경 이슈에서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존재가 영유아잖아요. 앞으로 그들이 살아갈 지구니까요. 영유아를 위한 환경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해답은 의외로 간단해요. 어른들이, 특히 부모들이 ‘본보기’를 보여주면 됩니다. 차창 밖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 자연을 사랑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는 거예요. 첫째도 본보기, 둘째도 본보기, 셋째도 본보기입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걸 부모들이 꼭 기억하셔야 해요.”
스스로 길을 내다
그는 늙지 않는다. 영원한 일곱 살 ‘뚝딱이’의 아빠이기 때문이다. 그 세월이 자그마치 34년이다. 월수입이 줄어드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MBC 개그맨에서 EBS 어린이 프로그램 진행자가 되었고, 강산은 변해도 자신은 변하지 않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뚝딱이’는 그의 주도로 만든 1세대 토종 캐릭터다. 당시 광고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던 그는 미키 마우스 같은 해외 캐릭터에 매년 큰돈을 지불하는 것이 못내 속상했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자비로 호텔방 두 개를 잡고, 제작진과 밤샘회의를 했다.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뚝딱이’다. 때론 아빠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 아이의 아빠 역을 맡으면서 어린이라는 세계에 깊이 매료됐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어른이 돼주고 싶어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성균관대 대학원 아동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후 서정대학교 유아교육과의 정교수가 됐다. 어린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그 꿈으로 가는 길을 여전히 힘차게 걷고 있다.
“아이들이 뚝딱이를 너무 좋아해서 문화 소외 지역을 돌며 공개방송을 하게 됐어요.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이요. 돌아가신 송해 선생님도 이런 마음이었을까요? 지방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하더라고요. 얼마 전에 경남 고령에서 녹화를 했고 앞으로도 강원도 인제, 전남 광양에서 아이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이번엔 또 어떤 개구쟁이들을 만날까, 번번이 가슴이 설레요.”
‘나눔’도 그의 삶을 구성하는 주요 키워드다. 백혈병소아암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찾아가 30년 넘게 웃음을 선사해왔고, 음성의 한 폐교에 동요학교를 설립해 7년간 우리 동요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기도 했다. 그 모든 일들을 그는 어린이들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 생각한다. 넘치게 받았으니,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창밖 풍경이 고향 마을과 놀랍도록 똑같아요. 제가 구례 섬진강 변에서 나고 자랐거든요. 지금은 한강과 검단산이 눈앞에 있고, 어린 날엔 섬진강과 오산이 집 앞에 있었어요. 자연을 놀이터 삼아 자란 제가 어느 순간 자연과 너무 멀어져 있더라고요. 어린이는 자연처럼 순수한 존재들이라 그들과 오래 함께하려면 자연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해요. 아름다운 강과 산을 오래 찾아 헤매다 운명처럼 이 공간을 만났어요.”
혹여 누가 채갈세라 곧바로 계약을 하고, 차마 혼자 누릴 수 없어 즉시 카페로 개조했다. 처음엔 실내에 장식용 소품을 많이 비치했다. 하지만 이내 알게 됐다. 자연이 최고의 데커레이션이라는 것을. 그 사실을 깨달은 뒤 인테리어 용품을 두 트럭이나 덜어냈다. 자연이 공간의 주인이 되자 카페는 금세 ‘명소’가 됐다.
그는 아침마다 7개의 신문을 정독한다. 30년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해온 일이다. 분야별 스크랩도 꼼꼼히 한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샅샅이 살펴야, 어린이라는 ‘우주’를 제대로 이해 할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그 노력으로 알게 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아이들이 많이 놀아야 한다’는 것이다. 놀이야말로 아이들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을, 그 권리와 의무를 위해 자신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매 순간 잊지 않으려 애쓴다.
바로 그런 맥락이다. 어린이 프로그램을 오래 해온 그는 자신의 ‘동지’인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기 위해 쭉 노력해왔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건강을 잃으면 동심도 사라질 거란 생각에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고, 대세를 따르는 일이 개인의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는 믿음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쇼핑도 ‘뚝딱이 아빠’로서 착용하는 옷과 안경, 모자가 전부다. 정갈하게 가다듬어온 삶이, 돌아보니 행복의 비결이다.
“어린이들과 함께해온 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라면, 자연에서 자란 유년 시절이 제 인생의 두 번째 행운 같아요. 제가 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거든요. 당장의 이익이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정직하게 땀을 흘린 보상은 언젠가 반드시 받게 돼 있더라고요. 자연이, 농사가, 그걸 알려줬어요.”
스스로 길을 내며 나아가는 힘. 자연이 준 선물을 가슴에 품고 그는 오늘도 꿋꿋이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다. 더러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그의 발밑은 언제나 ‘꽃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