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에 도전하는 ‘용기’, 힘들어도 절대 잃지 않는 ‘온기’, 울면서도 끝내 해나가는 ‘끈기’. 그의 오늘을 설명할 수 있는 세 가지 기운이다. 낯빛은 밝고 눈빛은 맑다. 엄청난 일정을 매일 소화하면서도, 해처럼 환하고 별처럼 빛나게 미소 짓는다. 좋은 일만 있어서가 아니다. 어제도 속상한 일이 있었다는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 일을 언급하다가도 이내 웃으며 분위기를 바꾼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노력하는 사람. 앞으로 읽어도 이현이, 거꾸로 읽어도 이현이다. 방송에서 자주 봐서인지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근해요. 섭외가 들어오면 일단 수락하는 편이에요. 방송 출연이 저에게 ‘앎’과 ‘배움’을 많이 가져다주더라고요. <골 때리는 그녀들>을 통해 난생처음 축구를 해보면서, 제가 승부욕이 많은 사람인지 처음 알았어요. ‘화’가 많은 사람이란 것도 깨닫게 돼서 매일 반성하고 있고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를 통해선 미처 몰랐던 세상일에 눈을 떴고,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리턴즈>를 통해선 양육자로서 알아야 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어요. 매주 울지만, 매우 감사하게 생각해요. 환경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아요. 언제부터 인가요? 관심은 일찍부터 있었는데, 실천이 변변찮아 부끄러워요. 그래도 수줍게 고백하자면, 대학 1학년 때인 20년 전부터 환경운동시민단체인 ‘녹색연합’에 후원을 해오고 있어요. 수업 시간에 NGO에 대한 과제가 있었거든요. 각자 자신이 응원하고픈 시민단체를 찾아서 리포트를 써야 했는데, 그때 제가 선택한 곳이 녹색연합이었어요. 사무실이 성북동의 허름한 주택에 있더라고요. 열악한 곳에서 이토록 좋은 일을 하신다는 게 가슴 뭉클했어요. 과제도 하고 후원도 하면서 환경 이슈에 관심을 갖게 됐죠.
20년이라니, 굉장한 시간이네요. 그때 그 마음이 지금껏 유지돼온 건가요?
아니요. 모델이 되고부터 아무 생각 없이 살았어요. 그러다 미국에서 2년간 활동했는데, 그때 정신이 번쩍 났어요. 패션쇼를 한 번 할 때마다 배출하는 쓰레기가 어마어마한 거예요. 종량제봉투도 음식물 쓰레기봉투도 따로 없이, 100리터짜리 봉투에 캔이며 플라스틱 같은 것들을 한꺼번에 다 버리더라고요. 지구는 인류가 공동으로 써야 하는 집인데, 그토록 큰 나라에서 그렇게 생활하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어떡하지, 지구는?’ 매일 걱정했던 기억이 나요.
‘세상과 나’의 관계에 대해 늘 깊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바로 그런 성찰의 태도가 방송에서 보여주는 공감 능력의 비결일 수도 있겠어요.
모델이라는 직업이 패션 상품을 끝없이 소비하게 하는 직종이잖아요. “작년에 산 것들, 다 버리세요!” 모델로 한창 바쁠 땐,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을 그렇게 선동하는 일이란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어요. 환경을 망치는 일에 앞장서고 있구나 싶어 죄책감이 들 때가 많았죠.
그 죄책감이 환경 보호를 하게 만든 원동력이었겠군요. 어떤 실천부터 시작하셨나요?
일 년에 옷을 다섯 벌 이하로 구매해요. 업체에서 보내주는 것이 많아 굳이 살 필요를 못 느끼거든요. 협찬 받은 옷들은 그 시즌에 열심히 입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저와 체격이 비슷한 모델들을 집으로 초대해 나눠줘요. 플라스틱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세제며 샴푸 같은 것들은 대용량으로 구입하고요. 텀블러와 에코백, 다회용 빨대 사용은 너무 당연한 것들이라 말하기가 부끄럽네요.
그 정도로도 매우 훌륭한데, 2019년 tvN의 <커버스토리>를 통해 ‘제로 웨이스트’ 실천에 도전했어요.
프로그램 섭외가 왔을 때 제가 ‘감히’ 어떻게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느냐고 말씀드렸어요. 세계적 제로 웨이스트 실천가 비 존슨 씨한테 ‘배우면서’ 하는 거라고 하시기에 결국 수락했죠.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그날 나온 쓰레기를 매일 담아 가야 했는데, 제가 그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걸 제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경각심이 생기더라고요. 그중엔 제가 줄일 수 있는 것들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 프로그램에서 비 존슨 씨가 알려준 다섯 가지 원칙, 요즘도 실천하고 있나요?
첫 번째가 ‘거절하기’인데, 이건 되도록 실천 중이에요. 배달 음식을 시킬 때 일회용 숟가락이나 포크, 빨대 등을 거절하고 있어요. 두 번째 원칙인 ‘줄이기’는 평생의 숙제가 될 것 같고요. 세 번째인 ‘재사용’은 그 시즌의 옷을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실행하고 있고. 네 번째인 ‘재활용’은 저보다 아들이 더 잘 실천하고 있어요. 택배 상자 같은 폐품으로 장난감을 만들어 노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다섯 번째인 ‘부패’는 쓰레기가 분해 되도록 하는 건데, 플라스틱이며 비닐 대신 천이나 종이를 사용하려 노력해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열심히
해나가고 싶어요.
지난해 11월 가수 버나드 박 씨와 ‘제로 웨이스트, 일상으로부터 시작하다’라는 주제로 랜선 콘서트를 진
행했어요. 그날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대본도 없이 초면의 가수분과 생방송으로 진행을 하려니 걱정이 많았죠. 근데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각자의 친환경 실천 방법을 채팅으로 올려주셨는데, 배울 것이 정말 많았어요. 대나무 칫솔이나 열매 세제 같은 것들은 저도 꼭 사용해보고 싶더라고요. 콘서트 장소도 참 좋았어요. 서울새활용플라자라는 곳인데, 거기가 업사이클의 성지거든요. 폐품으로 만든 공간이 그렇게 멋질 수 있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이기 때문에, 두 아이를 낳은 뒤로 환경을 위해 더 노력할 것 같아요.
첫째가 아장아장 걸을 때였어요. 아이가 “엄마, 밖에 눈이 오나 봐”, 그러기에 밖을 내다봤는데 창문 바깥이 온통 하얀 거예요. 그때가 봄이었거든요. 눈이 아니라 미세먼지라는 걸 깨닫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더라고요. 환경 교육이라기엔 좀 거창하지만, 두 아이에게 각자의 쓰레기통을 마련해줬어요. 자기 쓰레기를 자기가 치우는 것이 쓰레기를 줄이는 일로 이어지길 바라요.
방송은 여럿이 함께하는 작업이라,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환경이 돼줘야 할 것 같아요. 그것을 위해 노력 하는 게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과 어떤 작업을 하든 ‘밝음’을 유지해요. 너무 잘 웃고 너무 잘 울어서 민망할 때가 많지만, 환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매 순간 노력해요.
그에게는 ‘계획’이 없다. 그날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하지만 ‘꿈’은 있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것. 방금 헤어지고도, 내일의 그가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