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농법으로 키워야 더 잘 자라는 토종벼
“토종은 그 땅의 기후와 토질에 적응해 고정화된 종자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지역 환경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서 저마다 다른 벼를 재배했는데,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모두 없어졌어요. 화학비료·농약·기계 등을 사용하는 근현대 농법에
잘 맞고, 동시에 수확량도 많은 품종을 개량해 보급했기 때문이죠.”
그는 “토종벼를 재배한다는 것은 과거의 농사 방법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며, “그만큼 품이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토종벼는 특히 화학비료에 취약하다. 볏짚을 쓸 일이 많았고, 제초제가 없던 시절 풀과 경쟁하며 자란 토종벼는 키가 크다. 여기에 화학비료를 사용하면 더욱 웃자라 조금만 바람이 강해도 쉽게 쓰러진다. 자생력이 강해 인위적인 간섭 없이, 그저 자연의 힘에 의존해 키울 때 가장 잘 자란다
“인류가 농사를 시작한 이래 계속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순환농법 덕분입니다. 자연에서 얻은 것들이 거름이 되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리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던 것이죠. 지금은 ‘죽이는’ 농사를 짓고 있어
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땅을 오염시키고, 곤충이나 식물을 죽게 만들죠. 그런 점에서 전통 방식으로 키
워야 하는 토종벼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 현대 농법에 대한 반성이자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농부들이 각자 자신만의 고유한 종자를 갖게 하는 게 목표
한 잡지의 편집장이기도 했던 그는 잡지가 폐간되자 농부로 변신했다. 시작은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분양받은 다섯 평짜리 주말농장이었다. 소일거리 정도로 생각했던 텃밭 농사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다.
그는 “농약을 일절 쓰지 않고, 직접 거름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 주변 할머니들을 통해 순환농법을 배웠다”며, “농사가 순환하는 삶을 영위하는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본격적으로 농업에 뛰어들어 몇몇 도시 농부들과 자급공동체, 작물공동체를 만들었다. ‘내 손으로 재배한 것들로 밥상을 차리자’는 취지였다. 그것이 규모가 커지면서 2010년에 정식으로 우보농장을 설립, 이듬해부터 토종벼를 심었다.
“주식인 쌀의 자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종자의 중요성에 대해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종벼에 관심
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1910년대 우리나라에서 재배된 토종벼가 1,415종인데, 그중 450종이 농업유전자원센터에 보존되어 있더라고요.”
그는 그 씨앗들을 얻어 모판을 만들고, 일일이 손모내기를 하며 벼를 키웠다.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해
마다 품종을 늘려갔다. 그런 노력 끝에 마침내 올해 450종 전체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부터는 경기도 양평군의 지원으로 가현리 농부들에 게 토종벼를 보급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농부들이 각자 자신에게 맞는 품종을 선택해 고유한 종자를 갖도록 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종자를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보존하고 이어갈 수 있어야 진정한 농부’라고, 그는 믿는다.
“토종 씨앗이 품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도 중요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로 확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문화 예술계와의 협업도 종종 진행하고 있고, 벼꽃축제 같은 지역 여행상품도 구상 중입니다. 그렇다고 토종벼가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요. 다만 토종벼를 통해
생태적이고, 순환적인 삶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