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 녹색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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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의 두 얼굴,

‘그린워싱’ 주의보

이상기후 현상이 전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면서, 기후 위기는 곧 생존의 문제로 떠올랐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는, 사회 안팎으로 ‘기후 불안’을 야기하는 등 소비자들에게 환경보호에 대한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이는 자연스럽게 소비 행태의 변화를 일으켰고, 기업은 ‘친환경’ 제품 출시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등 소비자들의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한 전략을 앞다퉈 내세우고 있다. 기업의 친환경 전략이 매출로 이어지자 부작용도 발생했다. ‘가짜 친환경’ 제품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구매자의 친환경 니즈를 교묘히 활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기업들이 무늬만 친환경 제품을 내세워 소비 촉진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기업들의 행태가 바로 ‘그린워싱’이다. 친환경의 두 얼굴, 즉 ‘위장환경주의’를 뜻하는 그린워싱은 최근 소비자 사이에서 환경의 핵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글 나혜윤 뉴스1 경제부 기자

국내에서도 다수의 기업들이 친환경 중심의 경영을 통해 그린슈머의 ‘선택’을 받으려 고심 중이다. 실제 국내 음료 업계가 출시한 무라벨 생수는 비닐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호 응을 얻었다. A제조사는 라벨이 부착된 제품보다 무라벨 생수 매출을 1년 동안 5배나 늘린 성과를 달성했다. 또 생분해 플라스틱 소재 (PLA)를 활용해 친환경 용기에 담겨진 편의점 간편식 상품들도 그린슈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기업의 친환경 전략이 매출로 이 어지면서 부작용도 발생했다. 최근 소비자 사이에서 환경의 핵심 이슈로 떠오른 그린워싱이다.
그린워싱은 Green과 White Washing의 합성어로 2007년 캐나다의 한 마케팅 회사에서 ‘그린워싱이 저지르는 여섯 가지 죄악들’이라는 보고 서를 통해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보고서는 미국·영국 등 1만419개 상품의 환경성 조사 실시 결과 2007년 98%, 2009년 95%의 상품이 그린워싱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내용을 지적하고 있다.
소비자들을 속임으로써 경제적 이득을 쉽게 취하려는 기업의 그린워싱 사례는 국내외 안팎에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해외 유명 B기업 은 세정제를 담은 병을 ‘100% 해양 수거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들었다고 광고했다. B사는 세정제가 담긴 병에 ‘그린리스트(Greenlist)’ 로고까지 붙이며 제품을 홍보했다. 하지만 해당 로고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만든 자사의 로고였으며 친환경 이미지만을 활용한 이 기업은 허위 광고 혐의로 집단 소송을 당했다.

국내에서도 그린워싱 논란이 뜨거웠다. 국내 화장품 C기업은 ‘Hello, I am paper bottle(안녕, 난 종이 용기야)’이라는 문구를 제품 겉면에 붙여 판매했다. 한 구매자가 이 제품의 겉면을 뜯어보니 플라스틱 용기가 나왔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그린워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실상은 플라스틱 사용을 절감해 만든 용기였고, 제품 뒷면에도 이를 명시했으나 C기업의 제품 홍보 문구는 소비자들에게 ‘100% 친환경 종이 용기’라는 오해를 야기했다.
기업의 이 같은 그린워싱은 친환경 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을 키우는데다 시장의 공정한 경쟁 구도 형성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그린워싱과 관련한 규제 방안을 시행 중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영국 공정거래위원회(CMA·Com petition and Market Authority)는 올해 소비자법에 근거한 6가지 원칙을 담은 ‘그린 클레임코드(Green Claims Code)’를 발표하고 상품의 구성 성분에 대한 명확한 공개를 촉구하고 있다. 유럽은 ESG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는 SFDR(Sustainable Finance Disclosure Regulation) 을 시행해 그린워싱 여부를 검증하고 있고, 특히 프랑스에서는 지난해 4월 그린워싱에 대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위반 시엔 홍보 캠페인 비용의 80%까지 벌금을 납부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그린워싱 가이드라인은 없는 상황이다.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에는 환경 부 장관령으로 친환경 제품으로 오인할 부당한 표시를 금지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해외의 사례처럼 벌금 부과 등의 조치는 없기 때문에 강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신 환경부는 환경 표지 제도를 통해 정부 차원에서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제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환경부는 환경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자원을 절약할 수 있거나 환경오염 영향이 적은 제품을 대상으로 친환경 인증 마크를 부여한다. 하지만 이런 인증 형식의 경우에는 소비자가 직접 제품 구매 시 인증 마크와 기업의 자체 인증 마크를 일일이 구분해야 하기 때문에, 구매자의 편리성을 담보하고 기업의 허위·과장 광고를 금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현실성 있는 처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일각에선 그린워싱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 확대가 구체적인 규제를 만들어낼 여론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제품 의 최종 선택자인 소비자의 현명한 소비가 기업에겐 가장 두려운 행위라는 이유에서다. 위장환경주의를 비판한 다큐멘터리 에서 노엄 촘스키는 시민들의 행동으로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영리를 목 적으로 두는 기업의 행동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구매 결정력을 가진 소비자의 움직임뿐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비자의 똑똑한 ‘선택’은 기후 위기를 지킬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무기가 될지도 모른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