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ironment 환경과 사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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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과 지구에

무해한 사람이 되는 꿈




배우 박진희

그에게 자연은 ‘사랑’의 다른 말이다. 계절이 오고 가는 것에, 꽃이 피거나 잎이 물드는 일에, 그는 늘 설렘과 떨림을 느낀다. 그 사랑은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매 순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자연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랑하기에 알아가고 싶고, 알면 알수록 지켜주고 싶은 것. 지구를 향한 그의 ‘진심’은 거기서 비롯된다. 남보다 먼저, 누구보다 깊이, 혼자보다 같이…. 그가 이어온 친환경 행보가 서서히 ‘역사’가 되어간다.

글. 박미경

박진희 씨는 ‘따뜻한’ 배우다. 좋은 일로든, 나쁜 일로든, 남을 위해 자신의 돈과 땀을 기꺼이 보탤 줄 안다. 결혼식 축의금 전액을 기부하거나, 기름 유출 바다 현장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하는 일이 그에겐 그리 새삼스럽지 않다. ‘산뜻한’ 배우이기도 하다. 자칫 무겁거나 우스워질 수 있는 일들을 특유의 솔직함으로 청량하게 만들 줄 안다. 형편이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웃으며 이야기하거나, 젊은이들은 잘 쓰지 않는 구형 냉장고를 방송에 내보이는 일이 그에겐 별로 어색하지 않다. 따뜻함과 산뜻함이 만나 ‘소탈함’이 되었다. 좋아하면 닮는다더니, 그는 어느덧 자연을 닮아 있다. 계절 감수성이 매우 뛰어나실 것 같아요. 계절과 자연의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게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점점 심각해지는 기후 위기로 그 계절에 맞는 날씨가 사라지고 있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말하기 전부터 친환경 실천을 해오셨어요. 에코지니(박진희 배우의 별명)의 출발점이 궁금해요. 어머니의 영향이 커요. 식물에서 꽃이 피거나 열매가 맺히면 어머니는 늘 감탄과 감사를 표현하셨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저도 자연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 사랑이 싹을 틔운 게 이십 대 중반인데, 처음엔 단순히 제가 좋아하는 것이 훼손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요. 순전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시작한 일이, 두 아이를 낳으면서 ‘모두’를 위한 실천으로 바뀌었어요.

어머니가 배우님에게 그랬듯, 배우님도 두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실 듯해요. 저의 평소 행동을 눈여겨본 아이들이 어느덧 스스로 전등도 끄고 수돗물도 아껴요. 심지어 저한테 혼도 내요. 방에 불 끄는 걸 깜빡한 어느 날 작은애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불 끄고 다녀야지.” 큰애는 더해요. 바퀴벌레도 못 죽이게 해서 난감할 때가 많아요. 작은애가 길에서 나뭇잎 하나라도 따면 큰애가 동생한테 그래요. “네가 가만히 있는데 누가 와서 팔을 꺾으면 너는 좋겠어?” 되게 웃긴데, 정말 흐뭇하죠.

‘친환경 육아’를 하시는 걸로 유명해요. 천기저귀로 아이들을 키웠어요. 첫째 낳고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 일회용 기저귀를 써봤는데, 하루에 열 개 넘게 나오는 날도 있더라고요. 이 아이가 신생아 때 쓰던 기저귀가 할머니가 돼서도 땅속에 있을 거라 생각하니 죄책감이 밀려왔어요. 이건 아니다 싶어 천기저귀를 쓰기 시작했죠. 빨래가 번거롭긴 하지만, 천기저귀가 다 말랐을 때의 보송함이 전 참 좋았어요. 위생 차원에서도 더 좋았던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아이들을 ‘물’로만 씻긴다는 거예요. 감염병 예방을 위해 손만 비누로 씻게 해요. 땀 흘리며 뛰어논 날엔 냄새도 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지금껏 별 문제 없이 키우고 있어요.

육아 외에 배우님이 평소 실천하고 계신 것들을 알고 싶어요. 텀블러는 두 개를 들고 다녀요. 촬영장에 있을 경우 물을 마실 텀블러와 음료를 담을 텀블러를 따로 챙겨요. 일회용 포크나 수저 등을 사용하지 않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수저세트를 휴대하고 다니고요. 칫솔도 플라스틱 대신 대나무 칫솔을 써요. 화장지 대신 손수건을, 물티슈 대신 행주를 사용하죠. 집에서 쓰던 액체 세정제는 모두 비누로 바꿨어요. 샴푸바(bar), 린스바, 주방세제바를 쓰고 있어요. 고체 세정제를 쓸 때의 장점은 일회용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 플라스틱인데, 생활 속에서 그걸 줄여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해요. 아, 세탁세제는 ‘소프넛’이라는 열매를 사용합니다. 소프넛은 천연 계면활성제가 들어 있는 작은 열매예요. 세제로 사용하고 난 뒤 땅에 묻거나 정원에 버리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요. 여러 번 다시 쓸 수 있어서 가성비도 매우 좋은 편이죠.

어느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실천은 ‘댓글 달기’라고 말하신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개인들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기업과 정부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직면한 환경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죠. 기업에는 환경을 위한 제품을, 정부에는 환경을 위한 정책을, 국민이 계속 요구해야 해요. 그중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댓글 달기라고 생각해요. 가령 기업에서 친환경 제품을 출시하거나 정부에서 친환경 정책을 내놓으면,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로 의견을 제시하는 거예요. 환경문제를 다룬 이야기들은 SNS로 열심히 공유하고요. 제 인스타그램을 보고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됐다는 분들을 접할 때마다, 환경에 대해 더 열심히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마음먹게 돼요.

사람은 서로에게 ‘물드는’ 존재예요. 배우님의 주변인들도 환경에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환경에 대한 제 마음을 너무 잘 이해하기 때문에 대부분 함께하려고 노력해요. 가장 변화가 큰 건 남편이에요. 저를 만나기 전에는 미처 관심 두지 못했던 환경문제들을 알아가면서, 불편할 수도 있는 일상 속 실천들에 적극 동참해줘요.

연기를 시작하신 지 벌써 27년 차더라고요. 얼마 전 종영한 <태종 이방원>에서 원경왕후 역으로 연기 호평을 받으셨는데, 배우님께 어떤 의미의 작품이었나요? 연기를 잘했는지는 모르지만,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작품이었어요. 제가 맡은 인물 ‘민씨’는 여성으로서 정말 닮고 싶은 점이 많더라고요. 그의 총명함과 과감함을 저도 갖추고 싶어요. 무엇보다 저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와 제작진이 ‘잊지 못할 인연들’이었어요. 사람도 얻고 배움도 얻는, 참 고마운 작품이었어요.

최정윤 배우와의 오랜 우정도 인상 깊어요. 사람에게 친구는 정말 중요한 ‘환경’ 같은데, 우정을 잘 가꾸는 자기만의 원칙이 있을 듯해요. ‘선’을 넘지 않는 거예요. 가까울수록, 사랑할수록, ‘예의’라는 이름의 선이 있어야 관계를 잘 이어갈 수 있다고 믿어 요. 정윤이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친구예요. 그 선을 서로 지켰기 때문에 우정을 깊이 가꿔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꿈을 잃지 않은 눈빛이에요. 최종 꿈이 뭔가요? 긴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타인과 지구에 무해한 인간이 되는 것. 그게 제 꿈이에요.

무엇에도 해롭지 않기를 꿈꾸는 그가 아이처럼 해맑게 미소 짓는다. 무해하고 무구하게 물들어가는 그의 미래가 벌써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