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삶을 사는 또 하나의 방법
비전화공방
비전화공방은 전기와 화학물질의 사용을 최소화한 삶의 방식을 확산시켜나가는 단체이다.
닭을 키우고 퇴비로는 농사를 짓는 방식으로 자원순환에도 도전하고 있다. 시골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삶의 방식을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시도한다. 서울시 은평구 불광동 혁신센터에 자리잡은 비전화공방은 지역을 터전 삼아 순환하는 삶의 방식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필요한 적정한 수준의 기술을 확산시키는 곳이다.
글 .편집실 / 사진. 성민하
글 .편집실 / 사진. 성민하
전기와 화학물질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삶을 상상하고 실험하다전기에 의존하는 삶이 얼마나 취약한 삶인지, 화학물질이 우리의 삶을 얼마나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지 우리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으면서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전기
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안 쓰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대신, 사용을 최소화하면서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는 있지 않을까. 그 가능
성을 상상하고 실험하는 곳이 바로 비전화공방이다. 이곳에선 ‘비전화제작자’라는 활동가들이 전기와 화학물질에 가급적 의존하지 않고 자립적인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와 연구를 하고 있다. 비전화공방은 2000년대 초반, 일본의 발명가 후지무라 야스유키 선생이 실현한 대안적 삶의 방식에서 시작된 활동이다. 한국에는 서울시가 2017년에 처
음 도입하여 이곳 서울혁신센터 안에 개관하게 되었다. 비전화공방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장 큰 활동은 비전화기술을 확산시키는 일이다. 전기와 화학
물질을 적게 쓰는 삶의 방식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한 달에 한 번꼴로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시민강의 & 제작워크숍’을 실시하고 있다.
‘순환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주제로 도시에서 순환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시민강의도 하고 시민들과 함께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 시원한 닭장을 만들어 보는 워크숍을 실시했
다. 또한 ‘비전화기술로 어떤 것까지 만들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시민강의를 하고 야자껍질 활성탄을 사용하여 비전화정수기를 만드는 워크숍도 실시했다. 염소를 제거하는 데 특화
된 정수기라 도시에서 쓰기에 아주 적합해서 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비전화가 실현되는 공간, 비전화카페
그러나 말이 쉽지, 현대를 살면서 실제로 전기와 화학물질을 적게 쓰는 삶이 가능할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듯 지난해에 비전화제작자들이 실제로 ‘비전화의 공간’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건축경험이 전혀 없는 비전화제작자들이 직접 땅을 파고 터를 닦은 후 건물을 지어 ‘비전화카페’라는 공간을 개관한 것이다.
비전화카페에서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조명도, 냉장고도, 난방기기도 없고 카드 리더기도 없다. 대신 비전화공방에서 만든 램프, 비전화 정수기, 비전화 커피 로스터기, 비
전화 착유기, 화목난로(장작난로) 등을 사용한다. 비전화카페는 지난해 11월에 오픈했다. 비전화공방 측에 따르면, 왕겨와 볏집을 압축하여 벽을 단열한 덕분에 화목난로 하나만으
로도 사우나처럼 후끈한 겨울을 날 수 있었다고 한다. 다가오는 여름에도 냉방장치 없이 시원하게 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며 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것이
비전화공방의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아직은 큰 영업이익을 내는 수준은 아니지만 입소문을 타고 꾸준히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다고. 비전화카페에서 얻은 수익은 모두 서울시로 환
원되고 있다
이런 삶도 가능하다
비전화공방의 활동 목적은 단순히 전기 없는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전
기와 화학물질에 지나치게 의존해서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한번쯤 의문을 품어 보는
것,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삶의 선택지가 또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비전화공방에서는 비전화제작자들을 양성하는 사업도 실시하고 있다. 19~
39세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2017년부터 1년에 12명씩 선발하여 1년간의 교육 프로
그램을 운영한다. 현재 1, 2기를 포함해 총 24명의 비전화제작자를 배출했다. 이들은
1년 동안 유기순환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작물을 키워 밥상을 차리고 에너지 자립기술
을 익히고 작은 일거리를 발명하는 등 삶에 필요한 것들을 직접 만들면서 먹거리, 에너
지, 주거의 자립을 배우고 있다. 비전화제작자란 ‘전기도 화학물질도 사용하지 않고 만
드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삶을 제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비전화공방
의 사업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이수한
청년들 중에는 실제로 지방에서 직접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사례도 생겨
나고 있다. 플러그를 뽑은 다음 펼쳐질 세상, 그것은 생각처럼 파격적이거나 생경한 모
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알고 보면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세상이었고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반가운 세상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