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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플러스

버리지 않으면 꽃이 된다

리사이클링 아티스트, 미승

버리고 비워야 삶이 가벼워진다고 한다. 언제 쓸지 모르는 것들을 잔뜩 끌어안고 사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말이다.
하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무작정 버리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어떻게 소비하고 어떻게 버릴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어떤 이는 예술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폐화장품을 재료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젊은
아티스트 미승이 그런 사람이다. 환경문제가 화두인 요즘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정리. 편집실 / 작품 제공. 미승

립스틱, 아이섀도우, 매니큐어

화장대 서랍을 차지하는 립스틱, 아이섀도우, 매니큐어···. 유행이 지나, 유효기간이 지나 쓰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선뜻 버리기도 아까워 방치해두고 있다. 미승작가는 화장품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지 5년차에 접어든 젊은 아티스트이다. 쓰다 남은 립스틱이나 아이섀도우가 물감을 대신한다.
화장품이 얼굴에 바르는 것들이다 보니 그의 초창기 작품에는 인물화가 주를 이루었다. 채색도구로 화장품을 활용하겠다고 마음먹은 것 역시 인물화의 피부톤을 제대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아크릴 물감으로는 도무지 피부톤이 살아나지 않았던 것. 아크릴을 덧칠해서는 수습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시험 삼아 BB크림을 붓에 묻혀 본 것이다. BB크림은 시작이었을 뿐이다. 그후 립스틱, 아이섀도우, 매니큐어, 마스카라 등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화장품은 여느 채색도구들이 표현할 수 없는 질감과 색감을 가진다. 틴트의 맑은 느낌, 매니큐어의 광택, 펄아이섀도우의 반짝임 등은 어떤 물감으로도 표현하기 힘들다. 굳은 마스카라는 풍성한 머릿결을 표현하는데 안성맞춤이라고. 인물화를 중점적으로 그리다가 요즘은 꽃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섀도우나 립스틱은 꽃의 화사함을 표현하는데 더없이 훌륭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버려진 화장품이 작가의 붓끝을 통해 꽃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는 셈이다.

쓰지 않는 화장품 기부 늘어나

정말 폐화장품만 사용하는 것일까. 미승 작가는 100% 폐화장품이라고 한다. 초창기 에는 색깔이 부족해서 색조화장품을 구입하거나 멀쩡한 화장품을 뭉개 쓰기도 했단다. 하지만 요즘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놀라울 만큼 많은 분들이 화장품을 보내주고 계세요. 없는 색깔이 없을 정도로 색조도 풍부해졌어요.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메이크업 아티스트나 뷰티 유튜브 활동을 하는 크리에이터들도 안쓰는 화장품들을 모아서 보내주십니다. 얼마 전에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활동하다가 일을 그만두셨다면서 화장품을 잔뜩 보내주신 분도 있어요.”

향후 몇 년 간은 재료가 없어서 작품활동을 못한다는 소리는 못하게 생겼다고 한다. 우리의 서랍 속에서 잠자고 있던 화장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은 버려진다 하더라도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특히 화장품 속 미세플라스틱은 물과 함께 씻겨 내려가 세면대를 빠져나가면 그만인 것 같지만 돌고 돌아 다시 우리의 식탁으로 돌아온다. 미승 작가의 새로운 시도는 화장품 본래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도 폐화장품이 다시 새롭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리사이클링 아트 (Recycling Art)’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아직은 이름을 붙이기에는 이르다. 작가 스스로도 ‘화장품 그림’이라고 편하게 부르고 있다. 대중들도 일단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작가의 예술적 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젊고 패기 넘치는 아티스트의 실험적 시도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