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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줘서고마워

전남 무인도에 둥지 튼 세계적 멸종위기종뿔제비갈매기
지구상에 100여 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은 세계적 멸종 위기종 뿔제비 갈매기. 종 생태에 관한 정보도 거의 없고, 채집된 표본을 근거로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월동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을 뿐이던 이 새가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건 2016년의 일이다. 국립생태원이 전국의 무인도를 대상으로 자연환경조사를 진행하던 중 전남의 한 섬에 둥지를 튼 다섯 마리의 뿔제비 갈매기를 발견한 것이다. 이듬해에 다시 섬을 찾은 것은 모두 여섯 마리. 이중 두 쌍이 알을 낳았고 한 쌍이 부화에 성공해, 뿔제비 갈매기는 총 일곱 마리가 되어 번식지를 떠났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중국, 대만 등과 함께 전 세계 4번째 뿔제비갈매기 번식지로 기록됐다. 세계자연보전 연맹에서 발간하는 적색목록중에서도 절멸 위기에 직면한 위급종이기에 그 만남이 더 반가운 뿔제비갈매기를 소개한다.
글. 김승희
뿔제비갈매기
↑뿔제비갈매기

신비의 새 뿔제비갈매기

안녕. 나는 뿔제비갈매기라고 해. 제비갈매기들이 일반 갈매기보다 날렵한 몸매에 새하얀 깃털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중에서도 우리만의 매력을 꼽자면 바로 뿔처럼 멋지게 솟은 이 검은 헤어스타일이야. 우리처럼 멋있는 갈매기는 처음 보지? 아마 그럴 거야. 우리가 한국에 정착한 건 최근의 일이거든. 그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는 우릴 부를 이름조차 없었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였으니까. 게다가 1930년 이후 63년 동안 전 세계 어디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서, 과학자들은 우리가 아예 멸종됐다고 생각하기도 했어.

우린 한 번에 단 하나의 알만 낳아 키우는데, 성공적으로 부화시켜 새끼의 얼굴을 보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어서 종족 번식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아주 먼 옛날에는 중국과 대만, 필리핀 등지의 따뜻한 해안가에서 살다가 번식기가 되면 인근 무인도를 찾아가곤 했지. 근데 세상이 점점 도시화되면서 우리의 터전이던 해안 습지도 사라져가고, 어부들의 남획으로 우리의 먹잇감인 물고기도 점점 사냥할 수 없게 되면서 우리들이 발붙일 곳이 줄어들게 된 거야. 우리가 '신비의 새'로 일컬어지며 모습을 감춘 데에는 이런 슬픈 사연이 숨어 있어.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뿔제비갈매기와 천연기념물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괭이갈매기 등의 번식지로 섬자 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육산도. (영광군 제공)
↑국제적 멸종위기종인 뿔제비갈매기와 천연기념물 저어새, 노랑부리백로, 검은머리물떼새, 괭이갈매기 등의 번식지로 섬자 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육산도. (영광군 제공)
4번째 번식지로 주목받은 전남 육산도
한국에 처음 온 건 아마 2016년 봄이었을 거야. 따뜻한 바람이 불었던걸로 기억해. 이곳저곳 살 곳을 찾아 긴 비행을 한 탓에 우린 무척 지쳐 있었어. 그래서 잠시 쉴 겸 가까운 섬에 내려왔지. 어쩐지 예감이 좋았어. 우리 같은 바닷새들은 땅바닥에 둥지를 만들어서 알을 낳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거나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쥐떼들이 있는 곳은 일단 피해야 하거든. 근데 이 섬에 와서 '드디어 찾았구나!' 싶었지. 수천마리에 달하는 괭이갈매기 친구들이 먼저 와서 터를 잡고 있었거든.

잘 찾아왔다는 안도감에 무리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어. 무리라고 해봤자 고작 다섯 마리가 전부였지만, 우린 곧 이 섬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 무리 중 두 쌍이 알을 낳았고, 아쉽게 한쌍은 실패했지만 다른 한 쌍은 건강한 새끼를 볼 수 있었어. 부모새가 알을 낳으면 25일 가량 지나야 부화하게 되고, 그렇게 알을 깨고 나온 새끼들은 40일에서 44일 이후면 날 수 있는 법을 터득하게 돼.
뿔제비갈매기
↑뿔제비갈매기

뿔제비갈매기라는 멋진 한국식 이름을 얻게 된 것도 우리가 이곳에 와서 새 가족을 얻고 여름쯤 이곳을 떠날 때쯤이었던 것 같아. 우릴 먼발치에서 지켜보던 환경부 산하의 국립생태원 직원들이 우리가 번식활동을 위해 찾아온 걸 알아채고는 떠날 때까지 우리 존재를 비밀에 부치고, 문화재청과 국립생물자원관 등에 요청해서 탐방객의 출입을 막았다고 해. 앞으로도 우린 매년 봄이면 이 섬을 찾을 거야. 운 좋게도 우리가 섬을 떠날 때면 늘 한 마리씩 식구도 늘어나거든. 우리 식구들이 조금씩 늘어나 더 이상 위급종으로 불리지 않는 그날이 올까? 우리에게 관심 가져주고 반가워해 주는 이들이 있다면 언젠가 '신비의 새'라는 슬픈 별명을 뗄 날이 오겠지? 그때까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잘 지켜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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