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 그린

자전거로 선을 그리며 부여 여행

궁남지 포룡정

자전거를 타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떠난다. 마침 계절은 봄. 역사 유적과 자연이 어우러진 충남 부여는 최적의 자전거 여행지다. 백마강을 따라 조성한 길은 평탄하고 유순해 마음을 잔잔히 다독이고, 곳곳의 유적지는 호기심을 자극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점 찍듯 다녀가는 여행과 달리, 자전거로 길게 선을 그으며 만나는 여행은 그곳을 더 깊이 이해하고 추억하게 한다.

검이불루 화이불치, 부여의 유적

일정은 터미널과 도보 10분 거리인 정림사지에서 시작한다. 여기에는 부여 공공 자전거 ‘백제씽씽 부여’ 무료 대여소가 있어 편리하다. 터만 남은 옛 사찰을 꼭 가야 하는 이유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보기 위해서다.
이 탑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의 ‘방명록’ 같은 비문이다.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에 이르게 한 그가 660년 탑신 1층에 당이 백제를 평정했다는 뜻으로 ‘대당평백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새겼다. 1366년 전 일이고, 탑은 그전에 세웠을 테니 실로 아득한 세월이다. 탑을 돌면서 백제를, 시간을, 역사를 생각한다. 약 1400년 전 백제의 어느 빼어난 기술자, 아니 예술가가 탑을 완성하고 흐뭇하게 돌아섰을 날의 심정을 헤아린다. 그때부터 지금껏 한자리를 지킨 탑이란 고목이나 산처럼 존재감이 대단하다. 정림사지에서 길을 건너면 국립부여박물관이 나온다. 국립부여박물관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유물 가운데 하나인 백제금동대향로를 소장한 곳이다. 60센티미터 조금 넘는 크기에 용을 비롯해 연꽃, 산과 구름, 다양한 동물을 새겼고 맨 위는 봉황 한 마리가 앉아 마무리한다. 화려하고 정교한 형상을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오래도록 감상하게 된다. 그 밖에도 산수무늬벽돌, 치미, 사택지적비 등 눈길을 잡아끄는 유물이 많다.
이제 자전거 페달을 5분여 밟아 부소산성으로 간다. 걸어서도 20분이 채 못 미치는 거리다. 부소산성은 백마강을 내려다보는 해발 106미터 부소산에 쌓은 성이다. 백제는 한성에서 공주로 천도했다가 538년 다시 한번 사비 곧 부여로 수도를 옮겨 123년을 더 존속했다. 해발 106미터 산에 지은 산성이 백제가 마지막 운명을 건 곳이라니 좀 싱거운 느낌이지만, 여기서는 높이 대신 단단함을 보아야 한다.
부소산성은 흙으로 만든 성이다. 토성이 1500년을 지나고도 비바람, 세월에 흘러 내려가지 않고 남았다. 그만큼 튼튼한 성이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위원도 심사를 와서 탄성을 내뱉었다. 백제인은 기초의 중요함을 알고 실천한 사람들이다. 겉모습은 부드러운 곡선이라도 부소산성은 강하다. 낙화암, 고란사, 영일루 같은 명소가 몇 분 단위로 이어지지만, 그냥 숲을 즐겨도 좋다. 산성에서는 백마강과 건너편의 백제문화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백제의 건물과 생활상을 알기 쉽게 재현한 곳이다.

백제금동대향로

백마강과 궁남지의 낭만

부여에 와서 백마강을 빠뜨릴 수 없다. 부소산성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타고 백마강을 향해 간다. 비단처럼 고운 금강이 부여를 흐르는 구간을 이 지역 사람은 백마강이라 따로 이름 붙였다. 그만큼 자부심과 애착을 가졌다는 의미겠다. 강 건너 백제문화단지까지는 20여 분이 걸리고, 그냥 이편에서 강을 따라 쭉 달리는 방법도 있다. 구드래조각공원, 나래공원처럼 잘 단장한 수변 공간과 강물에 비친 햇살이 따사로운 시간을 약속한다.
15분쯤 페달을 밟았을까, 나래공원에서 방향을 다시 시내로 틀어 궁남지를 향한다. 사랑의 사연이 역사에 남은, 삼국시대 대표 ‘사랑꾼’ 무왕의 이야기가 전하는 못이다. <삼국사기>는 무왕이 634년 궁 남쪽에 못을 파고 20여 리에 걸쳐 물을 끌어들이고 주변 언덕에 버드나무를 심었으며 물 가운데에는 신선이 산다는 방장선산을 본뜬 섬을 쌓았다고 기록했다. 그 궁남지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으나 1960년대에 상상력을 동원해 복원했다.
커다란 연못, 그 가운데 섬과 정자, 못을 둘러싼 나무들···, 낭만을 형상화한 듯한 풍경이다. 봄에는 싱그러운 연두의 버드나무잎이, 여름에는 연꽃이 낭만을 완성한다. 바람이 수면을 건드려 파르르 물결이 일자,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도 무늬가 옮겨 온다. 이만큼 사랑스러운 풍경을 언제 보았나, 앞으로 또 언제 볼까 싶다.

부소산성 백화정

다음 자전거 여행 계획까지

궁남지에서 자전거 타고 여행의 출발점인 정림사지까지 겨우 5분 거리다. 옛 부여의 규모가 그만큼 작다. 자동차와 기차가 없던 시절에 사람의 생활 범위가 이랬을 것이다. 부여를 좀 더 느끼고 싶다면 자전거로 15분 걸리는 부여왕릉원에 들르고,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약 25분 이내에 도착하는 규암마을을 찾는다.
마을은 인구가 대도시로 떠나고 한때 쇠락했으나, 오래되고 정다운 집과 길에 반한 예술가 등이 모여들어 공방과 카페, 서점을 열면서 다시 북적거린다. 매끈한 신도시는 도무지 갖지 못하는 천년 고도만의 분위기가 물씬하다. 자전거라서 그 공기 속을 더욱 친근하게 파고드는 여행이었다. 돌아서는 발길에 아쉬움이 뚝뚝 묻어난다. 내친김에 다음 여행 계획을 세운다.
백제의 역사를 따라, 금강을 따라 공주 공산성에서 부여 부소산성 아래 구드래조각공원까지 달려야겠다. 약 35킬로미터, 두 시간여 코스라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자전거로 두 도시를 이어 만날 생각에 기대감이 부푸는 봄날이다.

정림사지 오층석탑
#Information

부여 자전거 추천 코스 약 12km

정림사지 국립부여박물관 부소산성 구드래조각공원과 백마강 변 궁남지 규암문화마을 백제문화단지 또는 부여왕릉원

#내 자전거가 없다면?

백제씽씽 부여!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속한 충남 부여와 공주는 공공 자전거 무료 대여 서비스를 시행한다. 일반 자전거와 전기 자전거를 모두 구비했으니 원하는 것을 골라 탄다. ‘백제씽씽 부여’ 애플리케이션을 스마트폰에 다운로드하면 자전거를 빌리는 것부터 반납하는 과정까지 원활하게 이용 가능하다. 백제씽씽 부여는 궁남지, 부소산성, 정림사지에서 대여, 반납할 수 있다.

  •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 한 번 빌려 2시간 동안 이용 가능
#부여 자전거 여행 추천 명소 3
  • 정림사지

    백제미의 극치라 평가받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이곳에 있다. 정림사지박물관에서는 모형,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방법으로 옛 사찰을 만나고 상상한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정림로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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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궁남지

    634년 무왕이 궁의 남쪽에 연못을 파고 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에 근거해 조성했다. 33만 제곱미터(약 10만 평) 부지에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아름답다.

    충남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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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문화단지

    왕궁인 사비궁, 백제를 대표하는 사찰인 능사, 초기 궁성인 위례성, 백성이 거주하는 마을 등을 세심하게 재현해 문화 대국 백제를 보여 준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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