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2

기후 위기 시대, 빗물에서 미래를 찾다

서울대학교 건설환경도시공학부
한무영 명예교수

‘빗물박사’라고 알려질 만큼 빗물 활용을 바탕으로 한 자원순환을 오랜 기간 연구해 오셨습니다. 연구 배경이 궁금합니다.

본래 제 전공은 수처리입니다. 과거의 수처리는 하수를 완벽하게 정화해 사용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어느 날은 내리는 빗물을 받아 분석했는데, 뜻밖에 수질이 매우 훌륭한 겁니다. 처음에는 변기 용수라도 아끼자는 취지에서 시작했습니다. 문득 이 물을 굳이 화장실에만 써야 하나 생각이 들더군요. 빗물을 사용하면 물 부족 문제 해결이 가능하고, 하수도 과부하를 줄여 홍수 예방에도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제가 속한 서울대학교 지속가능물관리연구센터는 빗물 식수화 연구와 함께 전 세계의 식수 빈곤 문제 해결에 주력합니다. 지역사회가 깨끗한 물을 자급하는 일은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6번, 즉 ‘모두를 위한 물과 위생’ 달성에도 이바지하는 실질적인 대안입니다.

기후, 에너지, 환경 문제를 관통하는 연결고리가 물이라고 강조하셨지요.

가뭄, 산불, 홍수, 폭염 등 기후 위기의 원인은 결국 물의 과잉과 결핍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비롯합니다. 빗물이 버려지지 않고 땅에 충분히 스며들면 물이 증발할 때 주변의 열을 빼앗는 기화열 작용으로 도시 온도를 자연스럽게 낮추는 효과를 내지요. 에너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을 정수하고 먼 거리까지 공급하는 데에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빗물을 각 지역에서 모아 분산 활용 할 시 기존 상하수도 인프라에 가해지는 부담과 에너지 소비량이 크게 줄어듭니다.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지만, 숲속에 빗물이 머물도록 하는 작은 ‘물모이’ 설치로 숲의 생명력이 되살아나 야생동물과 공존도 가능해지고요. 물을 중심에 두면 기후와 에너지, 환경 문제는 물론 인류와 생태계를 아우르는 지구 건강까지 해결할 길이 열립니다.
신속한 배수와 안정적인 공급이 절실했던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댐과 하천 정비, 상하수도 인프라 등 ‘눈에 보이는 물’ 관리가 중요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는 공학적 해법뿐 아니라 빗물이 땅에 천천히 스며들고 머물게 하는 ‘보이지 않는 물’, 즉 빗물과 토양 수분, 지하수 등의 수문학(水文學)적 관리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매년 겪는 봄철 가뭄과 산불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진단하시는지요.

흔히 봄철 대기가 건조해서 산불이 난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원인은 땅에 물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연간 강수량 데이터만 미루어 보아도 산을 촉촉하게 유지하기는 충분해요.
문제는 저장입니다. 빗물이 땅에 머물지 못하고 빠르게 빠져나가다 보니 정작 땅속에 저장되어야 할 수분이 턱없이 부족해진 겁니다. 물이 충분한 토양에서는 식물이 수분을 잃지 않아 불길이 쉽게 번지지 않습니다. 논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겨울, 봄에 토양이 메말라 나무와 풀이 수분을 잃어서 작은 불씨 하나에도 대형 산불이 일어납니다.

봄철 가뭄을 타파하고 지역사회의 회복력을 높일 방법은 무엇일까요?

우선 빗물 관리 인프라를 거시적으로 확충해 토양을 물을 머금는 스펀지처럼 가꾸어야 합니다. 여름 빗물을 저장해 산의 토양을 촉촉하게 유지하자는 ‘산촉촉 운동’을 제안한 배경입니다. 산 곳곳에 ‘물모이’라 부르는 작은 빗물 저장 웅덩이를 만드는 것도 방법이지요. 더불어 학교를 기후 회복 거점으로 삼는 ‘레인스쿨(Rain School)’ 모델도 널리 확장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비의 양을 측정하고 저장된 빗물을 관찰하며 자연스럽게 물순환을 배우게 유도하죠. 물이라는 자원을 특정 기관만이 아닌 공동체 모두가 함께 이해하고 책임지는 ‘공동의 자산’으로 받아들이는 출발점이 되도록요. 현재 캄보디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에서 ‘레인스쿨’을 운영 중입니다. 캄보디아 교육부에서는 적극적으로 레인스쿨을 도입하겠다고 호응했어요. ‘세계 비의 날(UN World Rain Day)’ 제정을 제안하고 국제 선언을 준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보입니다. 한국의 물 관리 인프라 기술과 더불어 이러한 빗물 철학이 세계에 전파되기를 바랍니다.

‘물 관리의 철학’이라는 새로운 관점도 제안하셨습니다.

제가 제안한 ‘모모모(MoMoMo) 물 관리’라는 개념은 기후 위기 시대 물 관리의 새로운 방향입니다. 전문 기관의 체계 적인 관리망을 바탕으로 시민과 지역사회도 생활 속 주체로 함께 책임지는 ‘모두에 의한’ 물 관리, 당장의 편익만이 아닌 생태계와 미래 세대까지 포용하는 ‘모두를 위한’ 물 관리, 눈에 보이는 하천수나 상수도를 넘어 빗물, 토양 수분 같은 ‘모든 물’을 소중한 자원으로 여기는 물 관리를 일컫습니다. 물 관리 철학은 정책과 제도, 예산을 검토 할 때 판별 기준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빗물 관리의 지혜를 세종 대왕의 ‘측우기’에서 찾으셨어요. 그 철학이 현대에 어떤 메시지를 주나요?

몬순 기후 속에서 가뭄과 홍수를 오랫동안 겪어 온 동아시아는 남다른 물 관리 역사와 지혜를 가졌습니다. 1441년 측우기를 발명한 세종 대왕은 하늘의 물을 국가가 관리해야 할 공공 자산으로 여겼습니다. 측우기를 활용해 강우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하고 기록하도록 제도화했습니다.
서양의 배수 중심 방식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하늘의 물을 직접 살피고 땅에 머물게 한 우리 고유의 지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빗물 활용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기후 위기는 앞으로도 우리 삶에 깊숙이 파고들 겁니다. 그에 따른 환경적 부담은 다음 세대가 떠안습니다.
빚을 물려주지 않으려면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시민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빗물의 가치를 널리 인식해 전문 기관은 물론 가정과 학교에서도 물순환을 일상으로 여기기를 바랍니다.

물을 중심에 두면 환경 문제는 물론
인류와 생태계를 아우르는 지구 건강까지 해결할 길이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