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킴은 ‘어른’의 마음과 ‘아이’의 얼굴을 가진 아티스트다. 만들고 부르는 노래들엔 삶과 사랑에 대한 통찰이 강물처럼 흐르고, 일련의 이타적인 활동들엔 사람과 세상을 향한 애정이 태산처럼 자리한다. 하지만 얼굴에는 아직 소년의 낯빛과 눈빛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점심으로 먹은 짜장면에 진심으로 만족할 줄 알고, 억지로 한 근력운동을 천진하게 자랑할 줄 안다. 스케줄이 아무리 빽빽하고 촘촘해도 일상에서 환경을 지키는 일과 짬짬이 행복을 누리는 일은 절대 미루지 않는다. 그의 오늘은 철저히 오늘 안에 있다.
눈부신 계절이에요. ‘신록’이란 말의 뜻을 잎들이 스스로 말해 주는 것 같아요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무렵을 저도 참 좋아해요. 온도도 습도도 딱 좋고, 옅은 녹색에서 짙은 초록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하나같이 예뻐요. 도시 속에 있는 게 때론 답답해서 서울 근교로 틈틈이 나들이를 해요. 바다 보는 것도 좋아해서 이따금 가고요. 운전할 땐 ‘에코 모드’로 주행해요.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탄소배출량을 제법 많이 줄일 수 있어요.
자연스레 ‘환경’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네요. 얼마 전 발매한 베스트앨범 <pkalbum>은 8년 만에 발매하시는 첫 LP예요. 특히 이번 LP는 ‘에코 에디션’을 따로 만들어 화제가 됐어요.
여러 아티스트의 LP를 보면서 늘 부러웠어요. LP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거든요. 오랜 로망을 이루되 환경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친환경 용지와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LP판을 따로 제작하는 거였어요. 한정 수량의 ‘에코 에디션’이지만 이번 시도가 음반 시장에 작은 변화로 이어지길 바라요.
지난 5월 출시된 폴킴의 베스트 앨범 LP ‘pkalbum’의 에코 에디션.
판매 오픈 3분 만에 매진을 기록했다.
교보문고 ‘그린페이지 챌린지’에도 참여하셨더라고요. 어떤 내용인가요?
6월 5일 ‘환경의 날’을 맞아 교보문고가 마련한 책 나눔 챌린지예요. 저뿐 아니라 배우 문소리 씨, 소설가 김초엽 씨, 배우 천우희 씨 등 14명이 참여했어요. 유명인과 독자들이 책을 나눠 읽고 인스타그램에 ‘#그린페이지’를 올리면, 해시태그 수만큼의 도서를 교보문고와 출판사들이 국제개발협력 NGO를 통해 지역아동센터나 양육시설에 기부하는 행사예요. 저는 양희은 선배님의 <그러라 그래>와 故 박완서 선생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로 참여했어요. 좋은 일에 좋은 책으로 참여하게 돼서 참 기뻤어요.
지난해 4월부터 환경부 기후행동홍보대사로 활약 중이세요. 평소 어떻게 실천하고 계신가요?
제가 하고 있는 활동들이 ‘착한 척’이나 ‘잘난 척’으로 보일까 봐 매우 조심스러워요. 하지만 비록 그렇더라도 환경 이야기만큼은 당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옳은 일이니까요. 사실 그리 대단한 일들은 아니에요. 텀블러 들고 다니기, 종이영수증과 일회용 식기 거절하기, 비닐 사용 줄이기, 포장 최소화하기, 재활용품 세척 후 분리배출하기, 천연 수세미와 비누 세제 사용하기 같은 거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들이죠. 죄책감이 밀려오는 순간도 물론 있어요. 1인 자취생이라 음식을 배달시키거나 택배로 물건을 주문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나오는 쓰레기가 꽤 되니까요. 꾸준히 반성하면서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해요.
홍보대사가 되기 전부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으로 알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들은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지 누구나 한 번쯤 궁금해하셨을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순
간이 있었어요. 2011년 가수가 되려고 한국에 와서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거든요. 매일같이 커피를 내리면서 ‘이 많은 일회용 컵들을 어떻게 하나’ 싶더라고요. 그 생각이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레 이어진 듯해요.
2020년 1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시민운동기구 ‘기후위기비상행동’에 1억 원을 기부하셨어요. 어떤 마음으로 하신 일인가요?
제가 받게 된 관심과 응원에 대해 저만의 보답을 하고 싶었어요. 그 보답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야에 작은 도움으로 이어지는 방식이길 바랐고요.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뿌듯한 마음이 여태 생생해요.
공식 팬카페 <폴인럽>에 들어가보면 폴킴 님의 ‘선한 영향력’을 칭찬하는 댓글이 많아요. 팬들이 가수를 닮아가는 것을 자주 보는데 그분들도 환경 이슈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제 팬들 중에는 저보다 더 열심히 친환경 생활을 실천을 하시는 분들이 꽤 있으세요. 제가 오히려 많이 배우죠. 제가 ‘선한 영향력’을 미친 게 아니라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선순환’을 해나가는 것 같아요
<위대한 탄생 3>으로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신 지 올해로 꼭 10년이 됐어요. 그때 꿈꾸던 가수 폴킴은 지금과 많이 다른가요?
10년 전이면 제가 폴킴이 아닌 김태형으로 살던 시절이에요. 그때와 비교했을때 지금 제 모습은 ‘단단해진 내면’과 ‘멀어지는 소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성숙해진 대신 덜 순수하달까요? 그 사실이 딱히 좋지도 그리 나쁘지도 않아요. 시간의 흐름은 ‘자연스러운’ 거니까요. 현재의 제 삶에서 노래로 담을 만한 이야기들을 꾸준히 모으고 있어요.
노래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자연스러움’이라고 들었어요. 폴킴 님이 생각하시는 자연스러움이란 무엇인가요?
자연스러움에 대한 생각이 매번 변하더라고요. 한 가지 분명한 건 자연스러움이란 게 특정한 성격이나 상태를 말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걸 단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지금의 제 모습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자연스러움에 대한 요즘의 제 생각이에요.
폴킴 님의 노래 가운데 <모든 날 모든 순간>은 들을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요. 어떤 날 어떤 순간을 사랑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예전에 저는 행복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어요. 찾아오면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지금은 행복이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차곡차곡 커리어를 쌓을 때의 성취감만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문득문득 만나는 찰나의 행복도 앞서 보낸 경험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찾아오는 거라 믿거든요. 행복으로 이어지는 ‘모든 노력의 순간들’을 사랑합니다.
환경을 지키려는 그의 ‘애씀’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행복을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그가 우리 모두를 위한 행복의 길을 오늘도 꿋꿋이 걸어간다. 더러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그의 발밑은 날마다 ‘꽃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