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의 매운맛은 캡사이신이라는 화학물질에서 비롯된다. 이 물질은 특히 고추씨에 다량으로 함유돼 있으며 그 자체로는 색과 향이 없는 휘발성 화합물이다. 고추가 캡사이신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흥미롭게도 곰팡이나 세균, 해충과 같은 해로운 환경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식물이 외부의 위협 요소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만드는 고유의 화학물질을 '피토케미컬'이라 일컫는데, 캡사이신은 토마토의 '라이코펜', 강황의 '커큐민' 등과 같은 피토케미컬의 일종이다. 미국 애리조나주 남부의 칠레 고추밭에서 고추를 먹는 동물들을 관찰한 결과, 고추에 위협이 되는 동물에게는 캡사이신이 독으로 작용해 고추를 멀리하려 했던 반면, 고추의 씨를 퍼뜨리는 데 도움이 되는 새 등의 동물에게는 고추가 맛있는 먹이가 되어 고추씨가 멀리까지 퍼진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적당량의 캡사이신은 우리 인간에게도 도움을 준다. 매운 음식을 먹게 되면 캡사이신이 통증 수용체를 자극해 뇌에서 체내 진통제 역할을 하는 엔도르핀을 분비하게 된다. 일시적으로나마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이 나면서 체온이 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는 캡사이신이 교감신경을 자극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캡사이신은 열량 소모를 촉진해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주며, 체내 활성산소의 활동을 억제하고 면역작용을 하는 대식세포를 활성화해 면역체계를 튼튼하게 만드는 데에도 효과가 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해가 되는 법. 너무 많은 양의 캡사이신은 위염 유발과 면역체계 교란 등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매운 음식도 적당히 즐기는 것이 좋다.
때로 참을 수 없는 매운맛을 감당하지 못하면 계속해서 물을 마시게 되는데, 아무리 물을 마셔도 매운맛의 고통이 쉽게 가시지 않는 경험을 한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이럴 땐 오히려 물 대신 기름진 음식을 먹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캡사이신은 물보다 기름에 더 잘 녹는 성질이 있기 때문. 우유 속 지방도 캡사이신을 녹이는 데 도움이 되므로 매운 음식을 먹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미리 우유를 챙겨두는 것도 좋겠다.
추운 계절을 뜨겁게 위로해주는 매운맛. 적당히 즐기면 스트레스 해소는 물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캡사이신으로 맛있게 겨울을 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