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비약적인 얘기가 아니다. 2010년 러시아 곡창지대의 폭염과 가뭄으로 밀 생산량은 급격히 줄게 된다. 러시아에서 주로 밀을 수입하는 시리아는 수입량 감소와 가격 급등을 참지 못해 폭동이 일어났고, 급기야 내전으로 발전한다.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향하던 시리아 난민들은 낡고 조그만 소형 보트에 수십 명씩 몸을 맡겨 지중해를 건너다가 변을 당했다. 결국 이상기후로 빚어진 러시아의 가뭄 사태가 나비효과처럼 수많은 난민을 죽음에 몰아넣은 것이다.
기후변화는 점점 더 인류의 삶을 위협한다. 올여름 미국 콜로라도에선 섭씨 40℃에 육박하는 폭염이 연일 지속되다가 하루아침에 영하 기온으로 떨어지며 폭설이 내렸고, 추운 시베리아 지역에선 38℃의 이상고온 현상까지 나타났다. 호주, 미국, 아마존 등 곳곳에선 폭염으로 촉발한 대형 산불이 거대한 산림을 태웠다.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대가다. 지구가 미세먼지, 플라스틱 폐기물로 뒤덮이고 폭염·가뭄·산불로 거주 불능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데도 번영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지난 30년간 배출한 오염 총량이 과거 2000년간 누적된 총량을 능가(데이비드 월러스 웰스의 [2050 거주 불능 지구])하면서 지구는 뜨겁게 달궈졌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IPCC]에 따르면 현재 지구의 온도는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1℃가량 상승한 상태다. 매년 기온이 약 0.2℃씩 오르며 계속 뜨거워지고 있는데 현재 수준으로 탄소 배출이 지속될 경우 2040년에는 지구 기온이 1.5℃를 넘어설 것이라고 한다. 1.5℃ 상승은 작은 수치가 아니다. 우리 몸도 정상 체온에서 1℃만 높아져도 몸에 이상 징후를 느끼듯이 지구는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식량 위기 등을 겪으며 몸살을 앓고 있다. 이쯤 되면 단순 기후 '변화'가 아닌 '위기'다.
[네이처]에 실린 논문엔 이미 1℃가량 상승한 지구온도가 앞으로 0.5℃만 더 오르면 식량부족으로 고통받는 인구가 3,500만 명에 이르고, 여기서 0.5도가 더 올라 2.0도가 되면 3억 6,000만 명이 기아에 시달리게 된다고 한다. SF 재난 영화의 현실화가 머지않았다.
기후 위기 경고장이 수없이 날아드는데도 경제부흥 경쟁 레이스는 계속된다. 폭염·가뭄에 내일 당장 수백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다 해도 석유수출국기구 같은 집단이 석유 채굴 중단을 결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국가와 기업들이 말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자'고 외치지만 행동은 그렇지 않다는 비판이 크다. 서로가 '먼저 모범을 보여줘'라며 관망하고 있을 뿐이다. "미래세대의 눈이지켜보고 있습니다. 만일 당신들이 우리를 저버린다면 우리 세대는 결코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고 한 '환경 소녀' 그레타 툰베리의 외침을 새겨들어야 할 때다.
전 세계가 일찌감치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탄소 배출 감축을 결의했지만 모범을 보여야 할 미국·중국 등 여러 국가가 이를 외면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각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지표로 나타낸 '기후변화 대응지수(CCPI) 2020' 보고서에서 61개국 중 58위로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선 탄소 배출량 증가율 1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하위 2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해외 언론들이 한국을 '기후 악당'이라 부르는 이유다. 기후 위기 대응은 인류의 생존이 달린 만큼 매우 엄중하다. 시간이 많진 않지만, 아직 늦은 건 아니다.
오늘의 실천이 가장 빠른 대응이 될 수 있다. 11월 초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조 바이든 당선자가 도널드 트럼프 현 행정부의 '파리기후변화협약' 탈퇴를 뒤엎고 취임 직후 협약 복귀를 약속하면서 기후 위기 대응 글로벌 모멘텀이 형성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2050년까지 탄소 중립(넷 제로) 목표를 이루겠다고 발표하면서 전보다 나은 탄소 배출 저감 노력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기후 위기 대응은 선택이 아닌의무다.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에 정치권이, 기업이 귀 기울여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