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컷 사향노루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분비하는 페로몬인 '사향'이 향수를 만들기 위한 재료와 원기회복을 돕는 약재로 인기를 끌면서 사향노루는 1980년대부터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최근 DMZ와 민통선 등지에서 이따금 그 모습이 목격된 데 이어 2018년 10월, 멸종위기종 동·식물 복원을 위한 국립 멸종위기종복원센터가 문을 열면서 사향노루 개체 수 복원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르면 10년쯤 뒤 그 반가운 얼굴을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글. 김승희
↑멸종위기 야생생물 사향노루
스스로 보호할 무기가 없어겁이 많은 초식동물
내 이름은 사향노루. 이름은 노루인데 고라니랑 닮았다는 말을 더 자주 들어. 하지만 몸집은 더 작고 왜소하지. 평균 몸길이는 650~870mm 정도, 다 자라도 10kg이 넘는 경우가 별로 없어. 자세히 보니 무섭다고? 아, 내 송곳니를 보고 하는 말이군. 드라큘라처럼 좀 길게 삐져나오긴 했지. 근데 암컷들에게는 이 송곳니가 매력적으로 보인다고. 나는 뿔도 없어서 다른 수컷들과 싸울 때도 이 송곳니를 이용하곤 해. 아, 혹시나 오해는 하지 말아줘. 이래 봬도 난 풀이나 이끼 같은 것만 먹고 사는 초식동물이니까.
내입으로 말하기 좀 그렇지만 나는 달리기 실력이 별로야. 그렇다고 맹수들이 왔을 때 잽싸게 도망칠 만큼 민첩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지. 그래도 야생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한 나만의 생존전략을 꼽자면, 최대한 적의 눈에 들지 않는 거야. 주로 동틀 무렵이나 해질 무렵에만 외출하고 대부분은 한적한 곳에서 숨어 지내. 밤에 풀을 뜯어먹으며 3~7㎞씩 이동하기도 하는데, 한 시간가량 풀을 뜯어 먹고 알맞은 장소로 숨어들어가 오랫동안 되새김질하는 식이지. 그래서 가끔 DMZ나 강원도 민통선에서 나를 봤다는 목격담을 들어봤을 거야.
난 그렇게 외지고 나무가 듬성듬성한 산비탈이나 절벽이라야 편안함을 느끼거든. 모험심이 별로 없어서 늘 다니던 길외에는 잘 가지도 않아. 겁쟁이 같다고? 음, 인정. 근데 힘도 없고 발도 빠르지도 않으니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을 최대한 낮춰야 하는 내 상황도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나처럼 생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내 귀가 큰 것도 아마 우리 조상이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다보니 이렇게 진화한 게 아닌가 싶어. 청각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거든.
환경부에서는 오는 2027년까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정책 방향을 개체 복원에서 서식지 보전 중심으로 전환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을 세웠다고 해.
인간에게 더욱 매력적인 사향으로 멸종 위기
어디서 좋은 향기가 나는 것 같다고? 이거 내 살 냄새야. 농담이 아니라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내 필살기가 바로 이 사향이라고. 배와 배꼽 사이에 있는 항낭에 사향선이라는 게 있는데, 여기서 나는 냄새야. 어찌나 짙고 매혹적인지 인간들조차 반했나봐. 내 향기에 '머스크'라는 이름을 붙여 주더라고. 슬프게도 이 사향을 얻으려는 수많은 인간들 때문에 우리는 대부분 희생됐고 한반도에는 한 10마리 정도밖에 남지 않게 됐어. 예전에는 한반도 전역에서 나를 볼 수 있었고 중국과 중앙아시아에도 많이 살았었는데, 이제는 환경부 멸종위기종 1급, 천연기념물 제216호로 지정됐을 정도니까.
하나의 사향을 얻기 위해서는 3~4마리 정도의 사향노루가 필요하대. 개체수가 많지도 않은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향기에 눈독을 들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동물성 향료 중에서 금보다 비싼 향료로 꼽혔지. 사향은 또 한약재로도 효능이 뛰어나 고가에 거래됐다고 해. 희소성에 가치도 높으니 전 세계적으로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물론, 다 옛날이야기고, 지금은 우리를 사냥하는 건 엄격히 금지돼 있지.
고맙게도 2014년부터 서울대공원 행동풍부화 동아리 회원들이 우리가 주로 다니는 강원도 민통선 길목에 비 가림 먹이대를 설치해놓고 겨우내 굶어죽지 않도록 꾸준히 관심을 가져줬어. 환경부에서는 오는 2027년까지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정책 방향을 개체 복원에서 서식지 보전 중심으로 전환하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보전 종합계획'을 세웠다고 해. 이렇게 관심 가져주는 많은 인간들 덕분에 우리에게도 조금은 희망이 생겼어. 세월이 좀 더 지나면 우리가 친숙한 동물로 여겨지지 않을까? 그때까지 많은 관심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