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인류는 새로운 문명을 맞이하고 있다. ‘환경 혁명’에 가까운 변혁을 맞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환경을 앞세우다 보면 성장은 뒤처진다’는 주장을 설파했다간 망신을 면치 못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이미 경영계에서는 이른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자리 잡았다.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를 의미한다. 투자를 유치하려는 기업이라면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이 세 가지 요소를 얼마나 잘 이행하고 있는지 투자자에게 확인시켜줘야 한다. 일찍이 2000년 영국을 시작으로 스웨덴, 독일, 캐나다, 벨기에, 프랑스 등 여러 나라 연기금이 자신들이 투자한 기업으로 하여금 ESG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늦었지만, 우리 정부도 오는 2025년부터 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코스피 상장사의 ESG 공시를 의무화했다. 2030년부터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한다. 그러나 이는 우리 기준일뿐 글로벌 ‘큰손’들은 이미 우리 기업에 ESG 성적표를 요구하고 있다. 운용 규모가 약 850조 원에 달하는 유럽 최대 연기금을 운용하는 네덜란드 공적연금 운용사 APG는 지난달 자신들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현대제철, SK, SK하이닉스, LG화학,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포스코케미칼, LG유플러스, SK텔레콤 국내 대기업 열 곳에 탄소배출 감축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APG는 “이 기업들의 저탄소 경영 전환은 기후 위기 완화 목표를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저탄소 경영 전환에는 적잖은 비용이 든다. 기존 설비 대신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설비투자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APG 같은 큰손이 굳이 우리 기업에 ‘저탄소 경영 전환’ 성적표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비용이 들더라도 환경 개선에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빙하가 녹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것이란 거창한 이야기는 차치하더라도, 기업의 ‘친환경 정책’이 궁극적으로 재무제표에 득이 되는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컨대 롯데칠성의 생수 브랜드 ‘아이시스’는 최근 하늘색 플라스틱 물 뚜껑의 크기를 작게 바꿨다. 또 물병에 부착하던 플라스틱 라벨도 없앴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조치지만, 결과적으론 수익도 높아졌다. 그래서 ‘탄소중립이 곧 성장’이란 정부의 인식은 차기 정부에도 계승돼야 한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을 통해 2030년까지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정부도 국제사회에 약속한 2030년 NDC는 준수하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탄소중립 실현 방안을 전면 수정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발전, 수송, 산업, 건물 등 4가지 부문에서 진행된다. 산업부문은 이 중 14.5%를 줄이기로 했다. 4개 부문 중 목표치가 가장 적다. 탄소배출량 감축목표에 부담을 표한 산업계의 의견을 받아 이를 조정한다는 것이다. 현실에 맞게 ‘방법’을 바꾸는 것을 반대할 이는 없다. 하지만 ‘환경이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주장이 시대 착오적이라는 점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