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경향신문 배문규 기자
국립생태원 연구진이 2014년부터 설치한 92대의 무인 생태조사 장비 중 하나에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찍혔다. 사진은 반달가슴곰이 겨울나기를 앞두고 몸을 한창 불리는 지난해 10월에 찍혔다. 사진 속 반달가슴곰은 가을볕이 눈부신 계곡을 가로질러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 크기로 볼 때 태어난 지 8~9개월 정도 된 어린 새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어미 곰은 한 번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형제 곰이 있을 수도 있는 셈이다. 국립생태원은 부모까지 포함하면 최소 3마리가 넘는 반달가슴곰이 이 일대에 살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동안 DMZ 일대에선 반달가슴곰을 봤다는 군인들의 목격담이 있었다. 2016년에도 곰의 형체로 보이는 영상이 촬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카메라와 불과 5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거리에서 반달가슴곰을 알아볼 수 있는 모습이 찍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태계의 보고 DMZ
국립생태원에선 이번에 발견된 곰이 멀리 지리산에서 건너갔거나 인근 농가의 사육 곰일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DMZ를 둘러싼 철책과 군의 감시 체계를 고려할 때 대형 포유류가 드나드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DMZ 일대에서 증언이 있던 야생 곰으로 추정됐다. 특히 새끼 곰이 있다는 것은 지속적으로 번식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인제와 고성으로 이어지는 강원도 동부전선은 백두대간과 DMZ가 만나는 지점”이라면서 “군 철책을 넘기는 어려워 DMZ 내부에서 횡으로 이동하며 지낼 것으로 추정되고, 상대적으로 경계가 느슨한 북한 쪽으로 오가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DMZ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발견되면서 남한에서 가장 안정적인 생물 서식지라는 점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면서 “고성부터 파주까지 DMZ 내부 전 구간은 야생 동물의 이동 통로로 보고, 교각이나 도로 등 생태축 절단 공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한반도 3대 생태축인 DMZ은 ‘호랑이, 표범 빼고는 다 있다’는 말이있을 정도로 생태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환경부 조사에서 총 6,168종의 야생 생물이 DMZ에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국내 멸종 위기종 267종 중 102종(38%)이 DMZ이라는 좁은 띠안에 몰려있다. 1953년 체결된 정전 협정에 따라 설정된 DMZ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약 2㎞의 범위이며, 면적은 서울의 1.5배인 907㎢ 정도로 알려졌다.
DMZ는 오늘날 ‘야생 동물의 피난처’가 됐다. 반달가슴곰 외에도 저어새, 두루미·재두루미, 사향노루, 수달, 산양, 검독수리, 구렁이, 삵, 담비 등 다양한 멸종 위기 동물들이 살고 있다. 동물의 낙원이 된 이유는 간명하다. 사방이 지뢰밭이라 사람이 들어설 수 없는 탓이다. 동물들에겐 사람보다는 지뢰가 안전한 셈이다. 60여 년의 고립이 만들어낸 기묘한 생태의 균형이다.
일반적으로 어미 곰은 한 번에 1~2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형제 곰이 있을 수도 있는 셈이다. 국립생태원은 부모까지 포함하면 최소
3마리가 넘는 반달가슴곰이 이 일대에 살고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반달가슴곰과 남북의 화해
환경부에선 무인 장비에 의존한 극히 제한적인 조사에서 반달가슴곰의 존재가 확인됐다는 사실 자체가 DMZ의 높은 생태적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DMZ 일대 생태계와 생물다 양성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고, 체계적인 보전·관리를 위한 종합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사실 남한에서 멸종 위기인 동물이 한반도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이 이전부터 있었다. 직접 내부 조사를 해보지 못한 DMZ와 북한 땅에는 여전히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환경부는 ‘멸종 위기 야생 생물 보전 종합계획 2018~2027’을 발표하면서 멸종 위기종 복원 목표를 비무장지대(DMZ) 너머 한반도 전역으로 늘리기로 했다. 앞으로 남북이 연결되면 동북아 전체로 생태축이 확대되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과 환경 협력을 강화해서 DMZ의 생물 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반달가슴곰과 따오기, 대륙사슴 등 한반도 남쪽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을 북한에서 들여오는 남북 생물종 교류도 추진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구체적 계획은 없으나 향후 남북 관계 개선에 따라 북한과의 협력이 점차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과 북의 반달가슴곰이 덩실덩실 만나는 날이 오게 될까.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