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플라스틱, 첨단산업 소재로 부활을 꿈꾸다
경희대 나노융합시스템 연구실 김재형 메이커
중국이 지난해 1월, 폐플라스틱 수입을 금지하면서 우리나라의 폐플라스틱이 갈 곳을 잃었다. 재활용품 수거업체들이 폐비닐 등의
수거를 거부하자 아파트 단지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는 쓰레기 대란까지 겪었다. 올해 2월에는 필리핀으로 수출했던 한국산 폐플라스틱이
다시 반송되는 일도 벌어졌다. 폐플라스틱은 재활용 처리비용이 높은데다 순도가 낮아서 산업체에서 외면하는 실정이다. 이때에 폐플라스틱을
단순히 재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가가치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선 메이커가 있다. 경희대 나노융합시스템 연구실의 김재형 메이커이다.
글. 편집실 / 사진. 김재룡
폐플라스틱, 쓰레기거나 자원이거나
환경오염 문제가 부각되면서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자원으로 재활용 기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재활용 방안이 다각도로 연구되고 있는데 김재형 메이커도 대학원 연구원 신분이다. “연구실에 3D프린터가 한 대 있어요. 3D프린터의 잉크처럼 쓰이는 필라멘트는 소모품이라 자주 교체해야 하는데 가격이 만만치가 않습니다. 폐플라스틱을 활용하면 직접 필라멘트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지만 연구원 신분인데다 연구 분야도 아니어서 선뜻 시작을 못하고 있었어요.” 생각만 하던 것을 실행으로 옮기기로 결심한 것은 지난해에 발생한 ‘쓰레기 대란’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폐플라스틱 처리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를 보면서 연구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중국이 2018년도부터 폐플라스틱 수입 중단을 선언한 이후로 12만 톤 이상의 폐플라스틱을 국내에서 매립하거나 소각하고 있다는 기사를 많이 봤어요. 재활용이 거의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현재 폐플라스틱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게 되었어요. 부가가치를 만들어 첨단산업에 쓰이는 소재로 탈바꿈한다면 수출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금속에 도전하는 플라스틱을 만들다
김재형 메이커는 먼저, 3D프린터의 잉크로 쓰이는 필라멘트 개발부터 시작했다. 재활용 플라스틱 필라멘트의 단점인 강도와 내구성을 보완한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 도전한 것.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기계장치 등의 분야에서 금속재료를 대신하여 주요한 용도에 쓰이는 플라스틱의 총칭이다. 이른바, ‘금속에 도전하는 플라스틱’으로 불린다. 가볍고 녹슬지 않으며 금속과 같은 기계적 성질을 가지고 있어 자동차·항공기·선박공업 및 우주개발 등 다방면에서 이용되는 소재이다. 이 중에서도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은 150도 이상의 내연성까지 갖춘 플라스틱이다. 핵심 비결은 탄소 성분의 배합에 있다고 한다. “제가 소속된 나노기술융합시스템 연구실에서 주로 다루는 소재들이 DNT(카본나노튜브), 그래핀 등의 탄소나노물질들이라 폴리머와 탄소 성분의 결합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일반인들은 ‘재활용’에만 관심을 두지만 연구실 동료들이나 탄소물질을 다루는 연구자들의 경우 ‘CNT 배합’이라는 부분에서 ‘Oh!’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탄소나노물질이 폴리머와 결합했을 때 어떤 특성을 갖게 되는지 알고 있거든요. 적정 배합비에 따라 강력한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올해 11월 중순쯤이면 완료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배달용기를 바이오플라스틱으로 교체하는 꿈에 도전
아직 국내에서 폐플라스틱을 활용하여 필라멘트를 만든 사례는 없다. 해외의 경우에도 관련 사례가 있으나 탄소 소재를 활용하여 강화플라스틱을 만든 사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폐플라스틱으로 부가가치 높은 산업용 소재를 만들어 보겠다고 나서는 것이 자칫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김재형 메이커는 ‘실패하기 어려운 프로젝트’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탄소나노 물질의 물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그동안 조사한 논문과 자료를 토대로 이론적으로도 100%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폐플라스틱 재활용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바이오플라스틱에도 도전해볼 계획이라고 한다. 바이오플라스틱이란 실외 환경에서 1~2년 내에 분해되는 플라스틱이다. 특히 내열성이 강한 바이오플라스틱을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배달앱이 뜨면서 배달용기도 굉장히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재활용률이 매우 낮아서 배달용기의 90%가 버려지고 있습니다. 바이오플라스틱의 가장 큰 단점은 내열성이 낮아서 음식의 온도로 인해 형태가 변형된다는 점입니다. 게껍데기에서 폴리머의 일종인 키틴질을 추출하여 PLA와 배합하면 내열성도 강하고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