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하나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나라도 해야 해요!
나노독성학과 면역독성학 분야 세계 최고의 연구실적 보유자 박은정 교수
박은정 교수.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선 이름이지만 세계 독성학 연구자들 사이에는 가장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박 교수가 발표한 수많은 논문들이 500회 이상 인용된 것이 증명한다. 그래서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기관인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의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돼 상도 받았다. 그가 연구하는 나노독성학은 샴푸, 자외선차단제 등과 같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제품들 속에 함유된 화학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다. 생활환경의 안전과도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글. 편집실 / 촬영. 김재룡
Q. 나노독성학이라는 분야가 생소합니다. 어떤 학문인가요?
쉽게 말하면 나노물질의 독성을 연구하는 학문이죠. 자연에 존재하는 나노물질도 있지만 인간의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쪼개놓은 물질들이 대부분이라 반응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응이 나올 수 있어요. 이런 반응을 충분히 확인한 후에 활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독성학자들의 주장입니다. 나노물질의 효과에 대해서만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부작용은 없나, 안전한 농도는 어디까지이냐 등을 연구하는 겁니다. 물질이 가진 독성의 안전한 농도를 찾아주는 것이 독성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노독성학은 우리 삶과도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어 샴푸, 자외선차단제, 은나노세탁기 등의 화학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하는 학문이잖아요.
Q. 우리가 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해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쓸 것 다 쓰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면서 ‘나는 안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입니다. 생활 속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 말할 때 자외선차단제를 많이 예로 듭니다. 자외선차단제가 지닌 독성은 적정한 수준입니다. 그것만 바르면 독성을 걱정할 일은 없어요.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폼클렌징으로 얼굴의 각질을 꼼꼼하게 제거하고 있어요. 또 자외선차단제를 흡수하는 과정에서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유해 라디컬)가 생성되는데 이를 막기 위해 항산화제 성분이 들어간 화장품을 바르고 있어요. 그냥 한 가지만 했으면 좋겠어요. 비단 자외선차단제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건 아닐 겁니다. 스스로 안전할 수 있는 독성의 농도를 넘어서는 사용은 자제해야 합니다.
Q. 교수님이 요즘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는 무엇입니까?
환경성 질환입니다. 환경성 질환의 발생 메카니즘을 찾는 것이 요즘 최대의 관심사입니다. 그동안은 계속 연구를 할 수 있을지 불확실성이 컸기 때문에 단일물질의 독성 기전을 연구하는 데 그쳤어요. 최근 경희대 교수로 임용된 이후로는 연구가 좀 더 자유로워진 덕분에 환경성 질환을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물질들의 관련성을 찾는 일이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세먼지 하나만 해도 그 속에는 화학물질, 중금속 등 수많은 물질이 포함되어 있잖아요. 이것들이 체내에 들어갔을 때 어떤 메커니즘을 거쳐 발병하는지를 복합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아직 갈 길이 멀었어요. 최근에는 미국의 산업안전보건연구원과 함께 석면 연구를 공동으로 시작했습니다. 석면은 우리나라에서 2009년부터 사용이 전면 금지된 물질이긴 하지만 문제는 체내에 들어가면 배출이 안 된다는 겁니다. 잠복기 등을 고려하면 석면으로 인한 질병 환자는 2045년에 최고조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데 아직 이를 치료할 수 있는 약물 등은 개발되지 않았어요. ‘더 연구할 것이 남아 있느냐’고 할 정도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그 원인조차 밝혀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Q. 화학물질에 대한 극단적 공포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조언을 주시자면?
화학물질이 어떤 심각한 반응을 일으키는지 연구실에서 날마다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저 역시 화학물질을 쓰고 있어요. 다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거죠. 세제를 쓴 후에는 식초를 희석한 물에 헹군다거나, 빨래를 갠 후에는 반드시 바닥을 한 번씩 훔쳐 주는 등의 작은 노력들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 노력 없이 ‘나는 세제도 안 쓰고 아무 것도 안 쓰고 살 거야’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노력들이 사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나 하나 애쓴다고 뭐가 달라질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나라도’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