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의 심리학 VS 기후변화의 정치학
차고 넘치는 기후변화의 과학적 증거들 속에서도 사람들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후변화를 완화할 가장 중요한 주체로서 국가가 기후변화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기후변화의 심리학>과 <기후변화의 정치학>이다.
글. 편집실
기후변화의 심리학
‘기후변화의 심리학’은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또한 기후변화가 초래할 암울한 미래의 모습을 그린 책도 아니다. 기후변화를 다룬 그간의 수많은 책들과 달리 ‘어쩌다 그렇게 판단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서들을 ‘인간 심리’ 차원에서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불확실하다고 여기는 인식에 대해 “확신에 대한 과신 때문에 형성되며 이는 우리가 다른 모든 보편적 위협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이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느 누구도 통화공급 확대에 따른 경기침체 억제 효과의 확실성을 가늠하기 위해 경제학자를 대상으로 여론 조사를 실시하지 않는다. 어떠한 분석도 이란의 핵전쟁 위협 평가에 있어서 명확한 가능성의 정도를 제시하지는 못한다. 이는 기후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례적으로 높은 의견의 일치를 보이더라도, 기후변화에 이처럼 확률적 언어를 적용하면 ‘불확실성’이라는 망령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를 하나의 사실로 인정하면 논쟁이 불필요해진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기후변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논쟁적’이다. 이를 테면 TV토론회에서 ‘기후변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가진다고 생각해 보자. 실제로 이런 방식의 토론회나 세미나가 수도 없이 넘쳐난다. 저자는 “텔레비전 토론회는 복합적이고 ‘사악한’ 기후변화 문제를 단순한 편들기 싸움으로 변질시킨다.”고 비판한다. 토론을 벌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기후변화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라고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의 정치학
<기후변화의 정치학>의 저자 앤서니 기든스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지구인의 딜레마에 대해 이른바 '기든스의 역설(Giddens's paradox)'에 빠져 있다고 표현했다. 즉,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화변화의 위험은 손으로 직접 만져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생활에서 거의 감지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리 무시무시한 위험이 다가온다 한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뿐이라는 것이다. 가시적이고 근접한 위험조차도 제대로 대비하지 않아 화를 당하기 일쑤인 현실에서 사람들이 과연 '추상적이고 모호한 위험'이라 불리는 기후변화를 위해 어떤 대비를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중요한 대응조치를 취하기도 전에 위기가 눈앞에 닥친다면 이미 때는 늦은 것이다. 1500년경 전성기를 구가하던 이스터 섬이 그랬다. 자연을 훼손하면서도 추상적 위험을 외면한 끝에 스스로 쇠퇴의 길을 걸은 대표적 사례이다. 무려 500여 년 전의 그들의 안전불감증, 혹은 '기든스의 역설'에 휩싸인 모습이 현재의 우리 모습과 꼭 닮아 있다. 기든스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 세계가 지금부터 즉시 과격할 정도의 획기적인 온난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범지구적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선진 산업국들이 앞장서야만 하고, 그 성공 여부는 정부와 국가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이 같은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저자는 ‘책임국가’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책임국가의 의무로 ‘기후변화 문제를 항상 최우선의 정치 의제로 삼는다’, ‘기후변화 정책의 국지적·지역적·국가적·국제적 측면들을 통합하라’ 등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