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자연도
저마다의 역할이 있다
삶의 어느 길목에서 문득 새롭게 다가오는 낱말들이 있다. 평소 익숙하게 써왔는데도, 어느 날 불쑥 가슴을 파고드는 단어들. 그에게는 ‘리바운드(슈팅한 공이 골인되지 않고, 링이나 백보드에 맞고 튀어나오는 것)’가 그중 하나다. 리바운드는 실패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한 번 기회를 얻는 일이다.
전직 농구선수이자 현직 농구교실 운영자로서 숱하게 써왔을 그 말에 대해 그는 요즘 다시 생각한다. 농구선수에서 농구해설가로, 방송인으로, 배우로…. 새로운 도전을 거듭하면서 ‘인생이 곧 리바운드’란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그걸 알고 나니 괜스레 흐뭇하다. 또 한 번의 도전을 앞두고 처음처럼 가슴이 뛴다.
“<어게인! 여고동창생>이라는 창작뮤지컬에 출연하게 됐어요. 중년이 된 고교동창생들이 같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젊은 시절을 추억하는 작품이에요. 제가 맡은 역할은 고교 때 농구선수로 인기를 끌다 패션모델이 된 우지원이라는 인물이에요. 연출을 맡은 박해미 배우님의 제안을 받고, 언제 또 이런 배역을 해보나 싶어 함께하게 됐어요. 처음보다 분량이 늘어나 좀 버겁지만,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연습 중이에요.”
그가 리바운드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하게 된 데는 올 초 극장가를 강타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영향이 크다.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주역 중 한 사람이었던 그는 극장에서 그 영화를 두 번 봤다. 몰입감이 엄청났다. 코트를 누비는 주인공들을 따라, 30년 전 그때로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영화 속 캐릭터 가운데 그가 가장 크게 감정을 이입한 인물은 ‘패배가 확실해 보이는 순간’ 몸이 부서질 정도로 자신을 희생해 팀을 승리로 이끈 강백호다. 에이스가 아니기에 팀의 궂은일을 도맡지만, 결정적인 순간 리바운드를 통해 경기의 흐름을 바꾼 인물이다. 강백호의 모습에서 지금의 자신을 봤다. 드라마에서도 뮤지컬에서도 그는 아직 ‘작은 배역’을 맡는 새내기 배우다. 아니 ‘작은’이란 말은 옳지 않다. 분량에 상관없이 모든 배역이 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도 저마다 자신의 역할이 있어요. 팀 생활을 오래 해봐서 알아요. 역할이 작거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면 돼요. 드라마도 뮤지컬도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나’보다 ‘전체’를 고려하며 작품에 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