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함께 2
내 몸도, 지구도 함께
건강해지다
러닝전도사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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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오직 한 개의 물건만 가져갈 수 있다면 나는 ‘운동화’를 선택할 것이다. 아니, 사실 운동화도 필요 없을 것 같다. 요즘에는 맨발 걷기, 어싱(Earthing)이 트렌드이지 않은가. 운동화만 있으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어디든 달리는 러닝전도사 안정은. 내 몸도, 지구도 함께 건강해지는 방법을 알아보자.
writer. photo. 안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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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며 숨 쉬는 지구, 나의 작은 발걸음으로
새벽엔 빵을 굽고, 낮엔 달리며, 밤엔 글을 쓴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하루 5분 달리기로 시작한 취미가 어느덧 13번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내고, 250km의 몽골 고비사막 마라톤까지 달려냈다. 지금은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후, 좋아하는 달리기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간다. 러닝 이벤트 회사 ‘런더풀(RUNderful)’을 설립했다. 달리기로 원더풀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꾸며, 늘 특별한 러닝 프로젝트를 기획한다. 그중 가장 뜻깊은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쓰담원정대(쓰레기를 담으며 달리는 원정대)’다.
달리기만큼 일상을 가깝고 생생하게 볼 수 있는 활동이 또 있을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고, 아기가 자라나듯 단풍이 변화하는 색감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볼 때도 있다. 신발 끈을 묶으며 화단에 떨어진 담배꽁초를 볼 때도 있고, 한적한 공원을 달리다 먹다 버린 테이크아웃 컵을 보곤 한다. 그러던 어느 2021년, 이상 기후로 한강 수위가 급격히 높아지며, 한강이 떠다니는 쓰레기섬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한강이 진흙과 쓰레기로 뒤덮인 것을 보니 가슴이 무너졌다.
러닝으로 그린 실천, 지구가 미소 짓는 순간
한강의 모든 산책로와 교량을 달리며 쓰레기를 줍는 ‘쓰담달리기’를 해보자! 준비물은 단순하다. 쓰레기를 담을 봉투와 면장갑. 단 두 개면 청소 차량이 닿지 않는 곳까지 깨끗해질 수 있다. 강서구부터 강동구까지 모든 길목을 빠지지 않고 15일 동안 46명의 러너들과 총 98.25km를 달렸다. “한강이 얼마나 넓고 긴데, 이 작은 쓰레기 하나 줍는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싶지만, 달려온 한강과 교량을 돌아보면 깨끗해진 길이 반갑게 맞아주곤 했다. 한강만 건강해졌을까?
쓰레기를 주우며 코로나19로 숨 막히던 일상을 벗어나 서로 응원하고 웃음 짓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우리가 달린 후 깨끗해진 한강을 보며, 한강뿐만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관계도 더 건강해졌다는 걸 느꼈다.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내 몸과 지구가 함께 건강해지는 방법도 있었다.
첫 번째,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이동해요. 집에서 베이글 가게까지 뛰어간다거나, 친구와 가운데 지점까지 뛰어가 수다를 나누고 오는 것이다. 그러면 입맛과 수다맛이 더 산다.
두 번째, 다이어트는 플로깅으로! 쓰담달리기는 일반 달리기보다 약 30% 더 많은 칼로리를 소모한다. 뛰고, 멈추고, 몸을 구부려 쓰레기를 줍는 과정은 인터벌인 셈이다. 게다가 점점 무거워지는 쓰레기봉투는 천연 덤벨이다.
한 발자국씩, 지구의 무게를 덜어내다
이젠 달리기 문화가 조금 더 발전한 해외 마라톤 사정이 궁금했다. 어느새 달리고 보니 도쿄, 보스턴, 런던, 시드니, 베를린, 시카고, 뉴욕까지 세계 7대 마라톤을 대한민국 최연소 완주자로 이름이 세기기도 했다. 해외 마라톤에서 인상 깊었던 건 ‘그린 러닝’의 실천이었다. 호주 시드니 마라톤에서는 급수대의 일회용 페트병 사용을 줄이기 위해 지하수에서 바로 물을 보급하는 시스템을 도입했고, 플라스틱 대신 다회용 주머니로 간식을 나누는 모습이었다. 다른 대회들도 종이 안내 책자와 전단지의 사용을 줄이고 모든 것을 모바일로 대체했다.한국에서도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마라톤 대회에서 약 30만 개의 종이컵이 버려진다. 하지만 이런 낭비를 예방하기 위해 일부 대회는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사용해 급수대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런 작은 시도가 모여 큰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은 15개월 된 딸과 유아차를 밀며 달린다. 함께하는 발걸음의 힘을 믿기에 이번에도 유아차러닝크루인, ‘캥거루크루’ 를 창단해서 약 200가족과 함께 달리고 있다.
부모가 되고 보니 아이가 푸르고, 맑은 세상에서 그리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뛰어놀며 자라나길 바라게 되었다. 이번 주말, 아이와 함께 쓰담달리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속도를 조금 늦춰도 괜찮다. 느려진 시간만큼 지구는 더 깨끗해질 것이고, 내 몸은 더 건강해질 테니까.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지구를 위한 그린 실천이 될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내 몸도, 지구도 함께 건강해지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