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평론

미국 대선과 추락한
‘플라스틱 빨대’의
위상

2024년 전 세계가 주목하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트럼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4년 전 대선 때와 올해 치러진 대선 과정을 비교해 봤더니 미묘하게 달라진 풍경이 있다. 플라스틱 빨대에 관한 논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writer. 뉴시스 성소의 기자

퇴출하냐, 사용하냐…
빨대로 유권자 모았던 美 대선 주자들

한때 ‘빨대’로 미국 대통령을 뽑는다는 말이 있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대통령 당선인이 재선에 도전했던 지난 2019~2020년 때 얘기다.
당시 바다거북이의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힌 사진 한 장이 소셜미디어를 뜨겁게 달궜고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자”라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시애틀 등 일부 주를 중심으로 식음료 매장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가 확산하기도 했다. 이런 움직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이들도 상당했다.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비단 빨대뿐이 아닌데 왜 ‘빨대’ 만 문제 삼냐는 것이다. 플라스틱 접시·포장재와 같이 큰 제품들은 사용하도록 내버려 두면서, 지구온난화를 멈추기 위해 빨대를 퇴출하자는 건 역설이라는 주장이다.당시 공화당 소속 대선 주자였던 트럼프는 이런 이유를 들며 “빨대를 왜 없애야 하느냐?”라는 입장을 폈다. 역발상으로 ‘트럼프’ 이름이 새겨진 빨간색 빨대를 팔아 선거 자금에 보태기도 했다. 트럼프 캠프가 당시 빨대 판매로 일주일 만에 거둬들인 수익이 한화로 6억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민주당 대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는 ‘플라스틱 빨대 퇴출’을 강력 주장했다. 강제해서라도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전면 금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민주당 후보였던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냐, 허용하냐는 부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한 것을 생각하면, 민주당 안에서도 해리스의 플라스틱 빨대에 대한 입장은 꽤나 급진적인 편에 속했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변화된 플라스틱 빨대의 위상이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들은 ‘잠깐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빨대에 대해 별다른 입장이랄 게 없었다. 다른 일회용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식음료·외식 프랜차이즈, 배달 산업 성장과 함께 빨대를 비롯한 일회용품 사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상황이 변했다.
자연에 완전 분해되기까지 수백 년이 걸리는 플라스틱 빨대가 매년 수십억 개씩 버려져 지구의 온도를 높이고, 이것이 바다거북이 같은 해양동물을 해치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해야 하냐, 말아야 하냐, 줄여야 하냐, 다른 제품으로 대체할 수 있나 등의 논쟁으로 이어졌고, 플라스틱 빨대는 대선 주자들의 입장이 선명하게 갈리는 하나의 아젠다가 됐다. 젊은 유권자들 입장에서 빨대는 후보자들의 ‘기후 감수성’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역할을 했다.

‘빨대 퇴출’ 외쳤던 해리스마저… 사라진 빨대 논쟁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이 논쟁은 사라졌다. 4년 전 대통령 후보 시절 빨대를 판매하면서까지 유권자들을 모으던 트럼프는, 이번 대선에서 구태여 플라스틱 빨대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대신 트럼프가 집요하게 공격한 것은 바이든 정부의 역점 친환경 정책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그린 뉴딜 등이었다.
‘플라스틱 빨대 전면 금지’를 외치던 해리스도 이번 대선에서는 이 공약을 슬그머니 철회했다. 빨대가 유권자들의 표를 끌어모으기는커녕 지지층을 이탈시킨다는 판단 때문이었을까. 자세한 사정은 모른다.
한국에서도 최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는 지난해 11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카페 등 외식업 매장에서의 플라스틱 사용 금지 규제를 철회했다.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도입한 일회용컵 보증금제의 전국 시행도 최근 국정감사에서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모두 ‘국민의 수용성’을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설명했다.
누군가는 환경 문제를 ‘불편함을 얘기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불편함과 비용을 이유로 문제 해결을 마다하려는 이들에게 “사회가 지속하려면 불편해야 한다”라고 말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빨대 논쟁이, 한국에서 일회용품 규제들이 사라지고 있는 것은 사회가 아직 ‘불편함’에 대해 얘기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뜻일까. 지구의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C 상승하기까지 머지않았다는 경고는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말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