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만남 1

걸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작가 손미나

  • 지금 자리에 한계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나’와 만나는 이가 있다. 작가, 강연가, 유튜브 크리에이터, 영화감독 등 다양한 영역에서 종횡무진하는 손미나 작가다.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고, 자신이 잘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지구사랑을 전해 자신의 진가를 또 한 번 발휘했다.

    writer. 최행좌   photo. 황지현

  • 0:00 /

    <오디오북 듣기>

  • 요즘 근황이 궁금합니다.

    1년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고 있어요. 국내외를 오가며 틈틈이 방송 출연도 하고, 강연도 하고 있어요. 일본 삿포로, 스페인 마드리드 과학자들에게 강연하기도 했고요. ‘올라미나’ 유튜브도 운영하고 있어요. 온·오프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산티아고 순례길(Camino de Santiago)은 스페인의 유명한 성지 순례길이에요. 약 800㎞에 이르는 길인데요.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때가 되면 그 길이 부른다는 말이 있어요. 막연하게 ‘언젠가는 가겠지’라는 버킷리스트로 간직하고만 있었죠. 그 길이 부르는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2022년에 그 길이 부르더라고요.
코로나19가 기폭제가 됐던 것 같아요. 자유롭게 누군가를 만나거나 외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삶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하게 됐어요. 특히 사람과 사람이 연결이 안 되는 현실에 대해서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여행을 다니는 게 일상인데 코로나19 상황에선 힘들었죠. 3년 넘게 집에 갇혀 있다 보니 아름다운 자연이 너무 그립더라고요. 마침 오랫동안 함께 작업한 일본 사진작가와 20대 영상작가가 동행에 나섰죠. 그렇게 셋이 걸으며 함께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촬영했어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기억에 남는 순간이라면?

순례길 어느 한 곳도 기억에 남지 않는 곳이 없어요. 걸으면서 ‘내가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구나’라고 느꼈죠. 매일매일 눈앞에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힐링을 받아요.
이 길 자체가 인생길과 닮았거든요. 나바라(Navarra)는 파릇파릇한 숲이 많은 지역인데, 어린 시절 같아요. 변화무쌍한 날씨가 성장통을 겪는 아이들과 비슷해요. 리오하(Rioja)는 수도꼭지만 틀어도 와인이 나온다는 곳인데요.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지는데 “와” 하는 감탄이 절로 나와요. 꽃청춘처럼 길 자체도 예쁘고, 날씨도 기가 막히게 좋아요. 그리고 카스티야(Castilla)는 중장년쯤 되는 것 같아요.
사막처럼 황량하지만, 그것만의 중후함과 멋이 있죠. 마지막 갈리시아(Galicia)는 비교적 길도 완만하고, 기후도 좋아요. 힘든 구간을 잘 마친 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편안한 노후를 보내는 시기 같아요. 이 길을 다 걷고 나면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죠.

다녀온 이야기를 책으로 발간해 화제였어요.

길 위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들려준 별의별 사연들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는 산티아고 순례길 800㎞를 걸으며 떠올랐던 생각과 깨달음, 그 길 위에서 발견한 위로와 희망, 나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에 관한 글이 담겨 있어요. 생각지도 못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 영화 <엘 카미노>를 통해 영화감독으로 데뷔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영화감독이라고 불리는 건 아직 어색해요. 영화 개봉이 됐을 때 영화감독이 됐다는 기분보다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뻤죠. 전국의 극장들을 돌며 무대인사를 했는데 정말 가슴 따뜻한 순간들이 많았어요. 영화가 끝나고도 끝까지 앉아 있는 분들, 눈시울이 붉어진 채 극장을 나서는 분들이 기억에 남아요. 특히 GV(Guest Visit)에 참석하신 한 노신사께서 “이 영화를 만든 것만으로도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어요”라고 격려해 주셔서 감동을 받았죠.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나서 깨달은 점이라면 무엇일까요?

제가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제일 많이 느낀 게 그거였어요. 처음엔 이것도 가져올걸, 저것도 가져올걸. 계속 후회하면서 걸었는데 한 600㎞ 걷고 나서 알게 되었죠. ‘진짜로 필요했던 건 몇 개 없었구나.’ 다 걷고 나서 깨달은 건 다시 오면 칫솔 하나만 있으면 되겠다 싶더라고요.

기후변화를 겪기도 했다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스페인에서 자연발화로 인한 화재가 2건이나 발생했어요. 그중 1건은 정말 가까운 곳에서 발생했어요. 어느 날 길을 지나는데 너무 탄 냄새가 나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큰 화재가 발생해서 뉴스에 나왔더라고요. 또 올여름엔 스페인 이비사(Ibiza) 섬에서 허리케인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어요. 안달루시아(Andalucía)에서는 우박이 떨어지기도 했고요. 세계 여행을 다니면서 예측 불가능한 기후변화를 체감하고 있어요.

환경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게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특별한 건 없지만,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면 기후변화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고 믿으며 몇 가지 실천하고 있는 건 있어요. 이미 오래전부터 비닐봉투 대신 종이봉투를 갖고 다니고 있고, 이왕이면 배달음식 대신 장보고 직접 요리해서 먹고 있어요. 과일이나 채소 같은 식재료를 살 때도 가능하면 포장이 안 되어 있는 것을 사는 편이에요. 또 걷는 걸 좋아해서 가까운 장소에 갈 때 웬만해서는 걸어 다녀요. 이때 주로 음악을 들으며 머릿속 생각들을 정리하죠.
세상의 시야를 넓히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요. ‘지구를 위해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같은 거 말이에요. 있는 건 사지 말고, 버리기 전에 현명하게 나누며, 지구와 공존하기 위한 노력에 즐겁게 동참하면 좋겠어요.

  • 세상의 시야를 넓히다 보면 알게 되는 게 있어요. ‘지구를 위해 내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같은 거 말이에요. 있는 건 사지 말고, 버리기 전에 현명하게 나누며, 지구와 공존하기 위한 노력에 즐겁게 동참하면 좋겠어요.

앞으로 또 어떤 일을 계획하고 있나요?

인생의 목표 중 하나는 ‘내가 가진 능력을 꼭 필요하고 가치 있는 일에 쓰자’는 것이에요. 그래서 요즘 스페인에 K-푸드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이를 계기로 한국과 스페인어권 국가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며 살고 싶어요. 저는 세상과 독자를 연결하고, 독자와 마음을 연결하는 ‘커넥터(Connector)’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창조적인 일을 하며, 거기서 얻은 걸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어요. 그게 여행이든, 강연이든, 유튜브든 모든 가능성은 열어두고요.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