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평론
플라스틱과 ‘헤어질 결심’
그리고 부산
앞으로 5개월 뒤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많은 세계 시민의 눈길이 한국 부산을 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170개국 이상이 참여해 ‘플라스틱 협약’을 준비하는 마지막 협상 회의인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가 바로 부산 컨벤션센터 벡스코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writer. 한겨레신문 김정수 선임기자
등장 한 세기 만에 지구 구성 성분처럼 된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손실과 함께 지구 환경 3대 위기의 하나로 꼽히는 환경 오염의 대표 원인 물질이다. 지구에서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키려는 플라스틱 협약을 두고 “파리기후협정 이후 가장 중대한 환경 협약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그렇게 보면 부산에서 오는 11월 25일부터 일주일간 펼쳐질 플라스틱 협약 협상 회의는 바로 직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릴 기후변화협약 ‘제29차 당사국회의(COP29)’보다 더 지구촌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도 있다.
약 한 세기 전 플라스틱은 열을 가해 틀에 부어 넣으면 금속처럼 어떤 모양으로든 성형할 수 있지만 금속보다 가볍고, 목재와 달리 물에 젖어도 썩지 않는 매력적인 신소재로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그 뒤 이어진 공학자들의 제조 기술 개선 노력에 힘입어 플라스틱은 이제 지구에서 쓰이지 않는 곳을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플라스틱이 없었다면 수십 나노미터의 패턴 해상도를 가진 반도체 소자 등 현대 문명의 혁신적 제품들도 나올 수 없었다는 점에서 현대를 석기·철기 시대와 필적하는 플라스틱 시대로 불러야 한다는 과학자들까지 있다.
기존 소재를 광범위하게 대체해 용도가 확장되면서 플라스틱 생산량은 빠르게 늘었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지난 4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4)’에 제출한 〈플라스틱 오염 과학〉 최신 보고서를 보면 세계 플라스틱 연간 생산량은 2000년 2억 3,400만 톤(t)에서 10년 만인 2019년에 4억 6,000만t으로 약 두 배 증가했고, 2040년에는 7억t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비례해 플라스틱 폐기물도 늘며 2019년 한 해에만 3억 6,000만t가량 발생했으나 재활용된 것은 9%에 불과하다. 90% 이상이 버려지거나 매립 또는 소각 처리되며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다.
플라스틱의 특장점인 내구성은 플라스틱이 버려진 뒤에는 재앙의 원인이 됐다. 분해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플라스틱 조각은 먹을 것으로 오인해서 삼킨 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풍화작용으로 더 잘게 쪼개진 미세플라스틱은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극지까지 퍼져 마치 태초부터 존재해 온 지구의 구성 성분처럼 돼 버렸다. 이런 플라스틱들은 제조 과정에서 함유한 유해 화학물질을 지속적으로 환경에 유출해 인간의 건강까지 위협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쌓여 가고 있다.
플라스틱의 제조와 폐기 과정에서 막대한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UNEP는 2020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6%인 18억t이 플라스틱 전체 수명주기에서 배출됐다고 집계하고, 이런 배출이 2040년이면 60%나 증가해 기후변화 억제목표 달성까지 어렵게 만들 것으로 보고 있다.
‘플라스틱 오염 종식 협약’ 의욕은 높았지만…
세계가 플라스틱 협상에 나선 것은 이런 상황을 더는 방치할 수 없다는 데 공감한 결과다. 2022년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 170여 개 나라는 플라스틱의 전체 수명 주기를 포괄하는 구속력 있는 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한다는 의욕에 찬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지만 막상 협약문 협상이 시작되자 높았던 의욕은 사그라들고 태도를 바꾸는 나라들이 나타났다.
환경단체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근본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의 대량 감산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해 왔다. 지금까지 협상에서 상당수 나라는 이런 주장에 동의했다. 그러나 플라스틱 원료를 생산하는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국가는 협약이 다룰 플라스틱 수명주기에서 원료 추출과 생산을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각 나라가 환경 협상에서 자국에 끼칠 영향을 따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개별 국가의 이익을 넘어서는 양보와 타협 없이는 지구의 공동선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5개월 뒤 협상에서 아름다운 양보와 타협이 이뤄져 부산이 인류에게 플라스틱과 ‘헤어질 결심’을 한 도시로 기억되길 기대해 본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