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클래스

버릴 가죽도 다시 보자
남은 가죽의
화려한 재탄생

  •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두 손도 가벼워지고 싶다면 꼭 필요한 것들만 쏙쏙 담을 수 있는 카드 지갑이 안성맞춤이다. 버려질 뻔한 가죽으로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지갑을 만들면 몸과 마음 모두 가벼운 봄이 될 것이다.

    writer. 허승희   photo. 황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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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는 봤나, 상가죽

가죽은 우리의 일상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재료다. 과거에는 동물 가죽으로 된 천연가죽만 있었지만,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인조가죽도 편리한 세탁 관리 등의 이유로 사랑받고 있다. 천연가죽은 가공 방법에 따라 베지터블 가죽과 크롬 가죽으로 나뉜다. 베지터블 가죽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식물의 씨앗, 나무 껍질, 과일 껍질 등에서 추출할 수 있는 탄닌 성분을 이용해 무두질한 가죽을 말한다. 크롬 가죽은 현대에 들어서며 개발된 방식으로 금속 연료를 이용해 무두질한다.
베지터블 가죽은 화학 연료가 사용되지 않는 만큼 인체, 환경에 무해하고 친환경적이다. 이렇게 가공된 가죽들은 쓰임에 따라 두께를 조절해 사용하는데 이 과정을 피할, 영어로는 스플리팅(splitting)이라고 한다. 일본식으로 ‘도꼬가죽’이라고 불리던 이 가죽은 이제 상가죽 또는 스플릿 래더(split leather)로 부른다.
상가죽은 상품에 사용되는 가죽의 아랫부분으로 은면이 포함되지 않아서 내구성이 조금 떨어진다. 이런 이유로 상가죽은 가죽 공예 초보자들에게 연습용으로 사용되고 버려진다. 환경 보호가 중요시되는 요즘, 상가죽이 새활용 재료로 떠오르고 있다. 나만의 스타일로 힙한 카드 지갑을 만들기 위해 한국환경공단 직원 다섯 명이 모였다.

  • 열정 가득한 5인방

    가죽 공방에 도착하니 먼저 와있던 정은혜 차장이 보였다. 신중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기에 물어보니 제작할 카드 지갑의 디자인을 미리 고르는 중이었다. “선생님, 이 디자인은 더 어려운 거죠?” 수업 준비로 분주한 강사를 불러 세울 만큼 심히 고민이 되는 모양이었다. 다음으로 도착한 건 김다연 주임과 최창민 주임이다. 둘은 부산울산경남환경본부에 같은 날 입사한 입사 동기다. 투닥거리며 들어오는 둘의 모습에서 지갑을 만들며 보여줄 티키타카가 기대됐다.
    곧이어 도착한 구아란 주임. 공방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완벽주의자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사람은 유원재 차장이다. 안경이 잘 어울리는 유원재 차장이 공방에 준비된 앞치마까지 착용하자 마치 가죽 공예의 대가처럼 보였다. “차장님이 공방 주인 같아요.” 정은혜 차장의 한마디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이날 모인 직원 다섯 명은 가죽 공예가 처음이다. 반짝이는 눈으로 강사의 설명을 듣는 직원들이 어떤 작품을 탄생시킬지 궁금해졌다.

  • 마음만큼은 이태리 장인

    가죽을 고르는 것부터가 핸드메이드 지갑 만들기의 시작이다. 직원들은 무더기로 쌓인 가죽 앞에서 신중한 고민을 시작했다. 최창민 주임과 김다연 주임은 서로 무슨 색을 고를 거냐며 묻다가 둘 다 검은색을 선택했다. 같은 색의 가죽이어도 제작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가죽 공예이기에 둘의 작품이 어떻게 다를지 기대됐다. 구아란 주임은 본인과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카멜 색상을 골랐다. 먼저 와서 디자인을 한참 고민하던 정은혜 차장은 가죽을 고를 때도 누구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직원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한 건 톡톡 튀는 오렌지색이다. “아내가 생일이라 선물로 주고 싶은데 어떤 색이 어울릴까요?” 유원재 차장은 배우자를 생각하며 고심 끝에 브라운 색상을 골랐다.
    다음 차례는 재단이다. 초보인 직원들을 위해 재단은 직선 한 번이면 끝나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까딱하면 손이 베거나 사용해야 할 가죽이 잘려버릴 수 있으니 잠깐 숨을 들이마시고 모든 신경을 그곳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재단을 마쳤다면 다음은 타공이다. 두꺼운 가죽을 바로 바느질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미리 바느질 구멍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그리프를 가죽에 대고 고무 망치로 쳐서 구멍을 내면 된다. 구멍이 삐뚤게 뚫리면 완성품이 예쁘지 않기 때문에 바느질 선에 따라 잘 맞춰 구멍을 내는 것이 포인트다.
    타공을 마쳤다면 가죽 공예의 꽃, 바느질이다. 오늘의 바느질 기법은 새들 스티치(saddle stitch)다. 바늘 두 개를 사용해 양쪽으로 바느질해서 앞뒤를 모두 마감하는 방식인데 말안장을 만드는 기술에서 유래됐다. 현재는 유명 명품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바느질 기술로 유명하다. 직원들은 바느질 설명을 듣다가 연신 “우와” 소리를 내며 신기해했다.
    “돋보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바늘귀에 실을 꿰는 것부터 난관에 봉착한 유원재 차장을 보고 막내 주임들이 크게 웃었다. 혼자만 다른 디자인을 선택한 정은혜 차장은 이미 바느질 마스터가 되어 조용히 박음질 공장을 가동하고 있었다. 정은혜 차장은 사내 DIY 동호회에서 활동한 경험 덕분인지 만들기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나만의 특별한 지갑

거친 테두리는 마감재를 바르고 문질러서 마감한다. 구아란 주임은 첫인상과 마찬가지로 완벽주의자 같은 모습을 보이며 지갑의 안쪽도 꼼꼼하게 마감 처리를 하고 있었다. 작은 지갑 만들기에도 완벽을 추구하는 구아란 주임의 모습을 보니 무엇이든 잘 해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똑딱이까지 달아주면 카드 지갑 완성! 완성된 지갑들을 모아놓고 보니 다 같은 방식임에도 모두 다른 모습이었다.
대부분 이름의 알파벳이나 선물 받을 사람의 이름을 각인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글자가 있었다. ‘amor eterno’, 포르투갈어로 ‘영원한 사랑’이라는 뜻이다. 지갑의 주인은 다름 아닌 김다연 주임. 이 문구를 각인한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으니 “각인 샘플을 보다가 뜻이 마음에 들어서 골라봤어요”라고 웃으며 대답했다.
가죽 공예 경험이 없는데도 모두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냥 버려질 뻔한 가죽을 이용해 만든 지갑은 명품 브랜드의 지갑보다 훨씬 가치 있을지도 모른다. 초보자의 서툰 솜씨로 만들었다고 해도 환경을 지키자는 마음으로 만들어진 지갑은 세상에 하나뿐인 명품 지갑이 분명하다.

가죽 지갑 만들기, 어땠나요?

  • 유원재 차장 곧 아내 생일인데요. 뜻깊은 선물이 될 것 같아 대전에서 달려왔습니다. 먼 길을 달려와 정성을 다해 만들었으니 좋아해 주겠죠?

  • 정은혜 차장 평소에 손으로 직접 만들기 하는 걸 좋아하는데요. 해 보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못 했던 가죽 공예를 체험하게 되어서 좋았어요.

  • 구아란 주임 상가죽으로 지갑을 만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퀄리티가 좋아서 환경을 위해 상가죽을 이용한 제품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김다연 주임 명함 지갑이 필요했는데 제 손으로 직접 만든 지갑을 보니 뿌듯한 기분이 들어요. 다양한 가죽 종류와 유래를 알게 되어 똑똑해진 것 같습니다.

  • 최창민 주임 원데이 클래스는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잘 만든 것 같아 기분이 좋고요. 동기와 같이해서 더욱 즐거운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