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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의 냄새
- 글 홍예지 파이낸셜뉴스 경제부 기자
- 11월. 차가운 냄새가 난다. 마스크 위로 빼꼼이 나온 얼굴에 찬 바람이 스친다. 올해도 끝을 향해 달려가나 보다. 감각에 냄새가 있을리 없지만 누구나 이 차가운 냄새를 알 듯 싶다. 계절에도 분명 냄새가 있다. 어릴 적 이맘 때 떠올랐던 청명하고 깨끗한 바로 그 냄새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기억 속의 청명한 하늘을 만끽했다
매년 봄가을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의 꿉꿉함이 올해는 많이 사라졌다. 당장 지난 9월 한 달 전국 초미세먼지(PM2.5) 평균 농도가 역대 최저치로 기록됐다. 이는 2015년 전국에서 초미세먼지 관측을 시작한 이래 월평균 최저치다. 대기 중 배출되는 국내 오염물질이 줄었고 중국의 대기질 또한 개선된 효과다. 끝없이 펼쳐진 맑은 하늘에 여러 생각이 스쳤다. 우선 반성했다. 그동안 환경 문제 해결책들에 회의적이었다. 한 마디로 ‘ 이제 와서 이게 되겠냐’는 거다.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노후 경유차 운행제한, 사업장 대기오염 총량제 같은 정책이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을 품었다. “뭔가 하긴 하는데 잘 하고 있는 거야?” 한국인의 ‘빨리빨리’ 성격이 여기서 나왔던 거다. 하지만 우직한 노력은 결과로 돌아왔다. 그간 추진해 온 각종 저감정책에 코로나19 이후 자동차 같은 교통수단의 이동량이 줄면서 우리는 기억 속 가을 하늘을 만끽했다. 미세먼지는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울 때, 공장·자동차 등 배출가스에서 주로 발생한다. ‘된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 코로나19 이후에도 과거와는 분명 다를거라 기대한다.
남은 시간 30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까
얼마전 발표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와 중간다리격인 2030년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NDC) 40% 감축안은 많은 비판에 직면해 있다. 2030 NDC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40%를 줄이겠다는 것이고,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2050년 국내 탄소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게 목표다. 화력 발전은 아예 중단되고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대폭 늘어난다. 산업 부문도 급변한다. 철강 공정은 수소환원제철로 100% 대체하고, 석유화학·정유산업의 경우 연료 및 원료 전환, 전력 다소비 업종의 에너지 효율화 등을 통해 배출을 줄여야 한다. 남은 시간은 약 30년. 보는 시각에 따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게 느껴질 수 있겠다. 사회 곳곳에선 또 한번 ‘되겠냐’는 목소리가 크다.
넷제로는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탄소배출량 ‘0’이라는 숫자에 놀랐던 게 사실이다. 무조건 반사처럼 ‘안돼’라는 말도 튀어나왔다. 그러다 청명한 가을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우리의 노력으로 되찾은 그 냄새 말이다. 생각을 고쳐먹었다. 30년간 묵직한 방향성을 갖고 노력해 나간다면 될 수 있지 않을까. 혹 2050년 완전한 ‘넷제로’를 달성하지 못한다 해도 분명 거기에 근접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있던 우리 사회의 노력들은 유효하다. 수험생이 일류대에 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가 쌓은 지식과 경험이 물거품 되지 않듯 말이다.
환경 오염에 따른 기후 위기와 미래 세대를 위해 탄소중립으로 향해야 하는건 분명하다.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나 규칙이 아닌 미래상을 그린 목표치다. 반드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면 목표는 높게 잡을수록 좋지 않을까.
후대에도 계절의 냄새가 전해지길 바라며
물론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시나리오에서 제시한 그린수소,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CCUS), 직접공기포집(DAD) 같은 신기술이 상용화되기 까지는 아직 먼 얘기다. 이들 핵심기술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하지만 우리는 기술 개발 속도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시대에 살고 있다. 1970년대 ‘마이카’ 시대를 선언했을 때 어머니는 지금 같은 모습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셨다고 한다. ‘정말 올까’ 하고 의심하셨단다. ‘넷제로’라는 목표도 결이 비슷하다. 2050년까지 약 30년 정도가 남았다. 도전해볼만 시간이다. 이 계절의 냄새가 후대에도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