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와 함께
희망을 향한
몸의 언어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 조현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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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반쯤 물에 잠긴 채 누워있다. 물이 더 차오르면 누워있는 사람은 곧 숨을 쉬기가 힘들 것이다. 여기에는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하고, 그것은 곧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가 환경 문제를 이야기하는 방식은 이렇게 강렬하다.
writer. 조수빈 photo. 황지현 reference. 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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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뒤편에 존재하는 다채로운 색깔
우리나라에서 ‘무용’이라 함은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 세 가지로 나뉜다. 세 장르의 경계는 뚜렷한 편이다. 하지만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이하 다크서클즈)의 춤은 경계를 넘는 일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심히 그 선을 넘나든다. 다크서클즈의 수장 조현상 대표는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질 때 더 다채로운 색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장르’보다 춤의 언어인 ‘움직임’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크서클즈’라는 이름을 언뜻 피곤한 예술가들의 모임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여기에는 조 대표의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다크서클즈는 ‘어둠(dark)’과 ‘순환(circle)’의 합성어예요. 하얀 캔버스 위에 여러 가지 색을 칠하면 결국 어두워지잖아요. 달리 말하면 어둠 안에는 여러 가지 색이 숨어있다는 건데, 우리 작품 안에 여러 색깔이 담기길 바랐어요. 또 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에너지 순환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다크서클즈’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다크서클즈는 이름만큼이나 강렬한 작품들을 만든다.
무용수가 그물에 갇혀 있다거나, 비닐을 덮고 있다거나, 옷장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 움직임은 모두 환경과 닿아있다. 각각 해양 부유 쓰레기와 빙하, 의류폐기물을 뜻한다.조 대표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21년,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가들의 설 자리가 한순간 사라지게 되면서부터다. ‘현대인의 행복’을 주제로 춤을 추던 그였는데, 일상이 무너지니 행복보다 당장 살 일이 문제다 싶었단다. ‘어떻게 살아야 될까’ 고민하던 시기에 우연히 본 TV 광고가 답을 알려 주었다. 화면 속에는 너른 설원 한가운데 30m 상공에 차가 매달려 있었다. 차량의 내구성과 안전성을 자랑하는 광고인 줄 알았는데, 별안간 뒤편의 빙하가 녹아 무너졌다. ‘기후변화, 지구에 대한 극한의 안전 테스트’라는 자막에 뒤통수를 세게 맞는 기분이었다.
기후위기 문제를 체감했던 적도 있다.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빙하 동굴 체험을 신청했는데, 그해에 눈이 오지 않아 빙하가 얼지 못했다는 거예요. 결국 관광하지 못했죠. 실제로 빙하 탐방을 할 수 있는 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단순히 아쉽다고만 생각했는데, 며칠 뒤 TV 광고로 빙하 문제를 접하게 된 거죠. 이대로는 안 된다 싶었어요.”
무용수로서, 예술감독으로서, 댄스팀의 수장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춤으로 환경 문제를 알리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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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춤’이 되는 과정
다크서클즈의 대표작 중 <Tomorrow> 속 세 가지 작품은 각각 다른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다. <foggy 하지 마>에서는 공기질 오염을, <NAKED>에서는 의류 소비 형태를, <Plastic soup>에서는 플라스틱 문제를 꼬집는다.
사실 다크서클즈가 환경 문제를 춤으로 승화시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구온난화를 다뤘던 작품 <1.5℃>에서는 사막화(Yellow), 해수면 상승(Blue), 해양 부유 쓰레기(Black) 등을 말했다. 앞서 말한 <Tomorrow>가 인간의 행위를 담고 있다면 <1.5℃>는 자연의 변화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하는 작품이다.
다크서클즈의 공연에는 유독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라는 후기가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의 공연에서는 방독면을 쓴 무용수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비닐 안에서 호흡이 옅어진다. 헌 옷이 무덤처럼 쌓여 있고, 머리 위로는 플라스틱 비가 내린다. 환경 문제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직관적으로 연출하기 때문에 충격이 크다. 충격이 큰 만큼 흥미도 높다.
이들의 메시지는 대중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메아리로 돌아왔다. <1.5°C>는 2022년 천안춤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고, <foggy 하지 마>는 환경재단에서 주최한 에코 크리에이터에서 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에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도 상영됐다. 조 대표는 그중에서도 환경재단에서 받은 우수상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예술 바깥의 분야에서 우리의 메시지가 통했다고 생각하니 괜히 뭉클하더라고요. 대중에게 무용의 힘을 알리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뿌듯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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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3.5%의 날갯짓
조 대표가 이리도 환경에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는 단 3.5%를 위해서다.
“‘3.5%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국민의 3.5%만 행동해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말이죠. 사실 환경 문제를 파고들면 들수록 ‘우리에게 정말 내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3.5%의 힘을 믿어보려고요.”
3.5%의 사람들을 깨우치는 것이 다크서클즈의 몫이라고 말하는 조 대표는 스스로도 바뀐 점이 많다고 했다. 하루에 꼭 한두 번씩 가던 카페를 가지 않게 됐다. 대신 집에서 내린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다닌다. 쇼핑과도 멀어졌단다.
“알고 나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잖아요. 저한테는 ‘의류 소비’에 대한 문제가 그랬어요. 옷이 환경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못 했거든요.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환경파괴가 많이 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는 새 옷을 사기가 꺼려지더라고요. 꼭 옷을 사야 한다면 세컨드핸드숍(중고 의류)을 이용해요.”
과거에는 다크서클즈 팀복이나 의류 굿즈를 제작하기도 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관뒀다.
다크서클즈는 당분간 환경에 좀 더 집중할 계획이다. 우선 댄스 필름으로 제작했던 <1.5℃-Blue>를 무대 공연으로 옮기는 중이다. 그런데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치를 제작하고 의상을 마련하려다 보니 그 또한 환경에 해가 되는 일이다 싶어 고민이 많다고 한다.
조 대표가 꿈꾸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요즘은 맑은 하늘을 보면 반가워요. 사실 반가울 존재는 아닌데 말이죠. 우리가 어릴 때만 해도 하늘의 색은 ‘하늘색’인 게 당연했는데, 미세먼지며 황사 등으로 인해 제대로 된 하늘 보기가 힘들어졌으니까요. 과거의 모습으로 완전히 되돌아가기는 힘들겠지만, 변화의 속도를 조금씩 늦추고 싶어요.” 환경이란 단번에 좋아질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둘 목소리를 높이고 힘을 모으다 보면 언젠가 다크서클즈의 작품 속 무용수는 방독면을 벗고, 사막이 아닌 풀숲을 달리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조 대표가 꿈꾸는 내일이고, 행복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