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 쓰레기를 넘어
    자원순환사회로!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 이지연
    • 사진 이서연
  • 우리는 쓰레기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알고 있을까. 쓰레기를 분리배출 할 때마다 플라스틱군에 넣어야 할지, 일반쓰레기로 버려야 할 지 갸우뚱한 경우도 많고, 가정에서 분리배출을 한다고 해서 제대로 재활용이 되는 건지도 궁금하다. 쓰레기 문맹탈출을 돕는 쓰레기 해설가이자 쓰레기 통역가, 쓰레기 박사라는 별명을 가진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은 심각한 쓰레기 문제의 해결책으로 '자원순환사회'를 이야기한다.
  • 홍수열
  •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동양사학 전공자가 쓰레기박사가 되기까지

고등학생 시절, 아무리 생각해도 직장인으로 사는 것은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적당히 일하고 편히 살고 싶어 서울대 동양사학과 진학을 일찌감치 점 찍었다는 홍수열 소장. 막상 대학에 들어가서는 환경 관련 책들을 읽으며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눈 뜬 그는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했다.
“석사 논문 주제를 당시 이슈였던 ‘환경빅딜’로 정해놓고 보니 ‘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막연하게 써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련 연구기관도 있겠지만 시민단체 쪽이 쓰레기 문제의 현실을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당시 출범 4년 차였던 ‘쓰레기문제해결을위한시민운동협의회(현 자원순환사회연대)’의 활동가 모집 공채에 지원했습니다.”
이후 11년 동안 소각장 매립지, 감염성 폐기물, 다이옥신, 편의점 쓰레기, 수도권 매립지의 불법 반입 쓰레기 문제를 연구하고, 폐카트리지 재활용 캠페인 등 쓰레기 문제에 관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에는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연구와 활동을 해보고 싶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의 문을 열었다. 쓰레기 분야에서는 나름 알려진 전문가였던 홍수열 소장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2018년 ‘폐비닐 대란’ 사태가 터지면서였다. 홍수열 소장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한 일련의 사태를 연구소 블로그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뒤로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환경운동 분야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여러 환경운동단체에 쓰레기 문제를 전담하는 담당자가 없었어요. 구조상 별도 담당자를 둘 여력이 없었죠. 쓰레기문제해결을위한시민운동협의회가 거의 전담하다시피 했고요. 그러다 2018년 폐비닐 대란 사태가 터지면서 다른 단체들도 전담활동가를 배치하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 다양한 활동들이 전개되었죠.”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 꼭 지켜야 할 규칙 5R REDUCE 줄이기 REUSE 재활용하기 ROT 썩히기 REJECT 거절하기 RECYCLING 재사용하기
잘 만들고, 잘 버려야 한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유튜브 채널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도 그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의 집행위원으로 오래 활동해온 홍수열 소장이 ‘쓰레기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채널로 1만 5,000명의 구독자를 모았다. ‘플라스틱은 어떻게 재활용 되나요?’, ‘식용유는 어떻게 버려야 하죠?’, ‘컵라면 용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나요?’ 등 쓰레기 분리배출과 관련한 사람들의 궁금증과 오해를 속 시원히 풀어주고 있다.
“단순히 어떤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는지 알려주는 건데 반응이 뜨거웠어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댓글을 보면서 사람들이 분리배출과 재활용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게, 더 정확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느꼈죠.” 홍수열 소장은 이런 바람을 담아 지난해 ‘플라스틱부터 음식물까지, 한국형 분리배출 안내서’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를 출간했다. 책에는 재사용과 재활용의 차이, 제대로 된 분리배출 이후라야 재활용이 가능해진다는 사실,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 처리를 위해 처리시설을 늘려야 하는 불편한 진실 등을 알려준다. 잘 버려야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고, 매립이나 소각되는 쓰레기의 양을 줄여야 지구환경도 지킬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계속 던진다.

각자의 영역에서 책임 있는 행동을!

“스웨덴의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더 많은 행동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깊이 공감해요. 우리가 소비를 하는 순간 쓰레기 문제는 불가피하게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소비 이후 환경에 미치는 충격을 제로로 하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죠. 기업은 생산단계에서 포장재를 줄이고 재활용이 쉬운 제품들을 만들어야 하고, 소비자는 분리배출을 잘해야죠. 이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산자, 소비자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실천하고 행동할 수 있는 일입니다.”
쓰레기 문제를 남의 일처럼 손 놓고 있기보다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 같은 환경운동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애초에 쓰레기가 나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고, 자원으로 계속 재활용하면서 쓰레기로 배출되는 양을 줄이자는 구조를 순환경제 또는 자원순환사회라고 합니다. 자원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용하기 때문에 신규자원의 투입과 쓰레기 배출이 거의 없는 경제를 말하죠. 순환경제로 가기 위해서는 쓰레기를 반복해서 재활용하는 구조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려면 재활용 기술이 발전해야 하고 생산, 분리배출, 선별, 재활용 과정도 변해야 하죠.”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쓰레기 재활용률은 62%다. OECD 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다. 홍수열 소장은 “전 세계를 기준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폐기물 관리체계가 선진적으로 잘 갖춰진 국가로 분류된다.”라고 말한다. 1995년 1월 1일 처음 시행된 쓰레기종량제 또한 외부에서는 높이 평가 받는 제도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실제 OECD 주요 국가들도 우리나라 쓰레기종량제를 높이 평가해요. 쓰레기를 분리배출 하려면 버리는 사람의 태도와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분리배출한 쓰레기를 따로 수거해 선별장에서 일일이 골라내어 재활용하는 인프라도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그러한 시스템과 관련 제도들이 비교적 현대화되어 있기에 체계 자체에는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요. 문제는 생산되는 제품들이 더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반면 분리배출에 대한 관리는 느슨해진 면이 있어요. 기업은 더욱 책임 있는 자세로 물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활용되지 않는 제품을 만들어버리면 소비자가 아무리 분리배출해도 소용 없어지니까요.”
일회용 포장재와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시민행동들은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용기를 챙겨가 필요한 만큼 소분해오는 ‘소분 가게’들이 조금씩 자리잡고 있는 것. 홍수열 소장은 2014년 문을 연 프랑스의 ‘장 부테’를 예로 들었다. 장 부테는 샴푸, 세제, 기름, 식초, 와인 등 소분 판매용 제품들을 프랑스와 벨기에 곳곳에 위치한 매장에 공급한다. 가게 주인은 소비자에게 표준 용기를 판매하거나 보증금을 받고 빌려준다. 2019년부터 파리와 뉴욕에서 시범운영 중인 루프(loopstore.com) 시스템은 일회용 포장재를 재사용 포장재로 대체한 케이스다. 소비자가 온라인으로 주문한 식료품 및 배달용품을 배달할 때 이전 주문 시 사용한 빈 용기를 회수해 재사용한다.
“우리나라에 소분가게가 자리잡는 데는 몇몇 걸림돌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민간 차원의 매장들이 하나 둘 들어서고 있습니다. 이런 민간의 노력들이 제도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 차원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환경오염을 줄이고, 소비 시에는 분리배출을 통해 재사용·재활용률을 높임으로써 순환경제, 자원순환사회로 향하는 것. 홍수열 소장은 우리 사회에 그런 인식들이 자리잡고, 더 많은 책임 있는 행동들이 행해질 수 있도록 ‘쓰레기 박사’로서의 역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