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 인간과 지구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연구

    • 이지연
    • 사진 김준후
  • 플라스틱 사용량 증가와 이에 따른 쓰레기 처리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석유계 플라스틱을 대체할 소재가 개발된다면 어떨까? 울산에 소재한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황성연 센터장은 2019년 연구팀과 함께 자연계에서 100% 분해되며 낙하산 소재만큼 질긴 고강도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개발했다. 2021년 3월에는 퇴비화 조건에서 한 달 안에 자연 분해되는 N95 성능의 신개념 생분해 마스크 필터도 개발하면서 플라스틱 사용과 처리에 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황성연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장
비인기 종목이었던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하다

1907년 ‘플라스틱’이라는 화학혼합물질이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지 114년이 지났다. 플라스틱이 인간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무분별하게 생산하고, 사용하다 보니 배출되는 플라스틱 쓰레기 처리 문제가 전 세계적인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또, 자연으로 유입된 폐플라스틱이 500년은 지나야 썩는다. 이런 흐름 속에서 황성연 센터장과 연구팀은 2019년 2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 10년이 지나면 자연 분해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개발했고, 이는 폐플라스틱 문제 해결에 긍정적 신호탄이 되고 있다.
“바이오 플라스틱은 크게 생분해성 플라스틱과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으로 분류합니다. 사용한 플라스틱을 미생물이 있는 조건에 매립했을 때 특정 조건에서 분해가 잘 되는 것을 보통 ‘생분해성 플라스틱’이라고 하고요. 또 하나는 생분해성 플라스틱만큼 잘 썩는 것은 아니지만 나무나 옥수수 같은 식물계 바이오매스 기반의 원료를 20~30% 정도 혼합해 만드는 것을 바이오 기반 플라스틱이라고 합니다. 탄소 저감 측면에서 봤을 때 석유계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바이오매스 기반의 플라스틱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의 양이 적기에 탄소 저감 차원에서 효과가 있다고 보고 바이오 플라스틱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학박사인 황성연 센터장은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한 세월만 15년이 훌쩍 넘는다. 학창 시절, 동기들이 한창 인기가 많았던 전기차 배터리, 태양전지 연구에 몰두할 때 그는 올림픽 비인기 종목과 같았던 바이오 플라스틱 연구를 해보자 발을 디뎠다.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하는 ‘재미’가 있었고 남들이 안 해본 연구, 남들이 하지 않는 연구를 해보고 싶은 게 이유였다.

우리의 연구가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바이오 플라스틱 합성 분야 연구를 꾸준히 해온 황성연 센터장은 관련 연구를 보다 심도 있게 진행해보고자 8년 전 한국화학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부터는 연구팀과 함께 생분해성 플라스틱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 막바지였던 2018년 국내에서 아파트 단지 폐비닐 수거 대란이 일면서 폐플라스틱 처리 문제와 같은 환경 이슈들이 사회적으로 부각됐다. 플라스틱 대체 소재는 무엇인지, 재활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인 2019년, 때마침 생분해 플라스틱 기술 개발을 완료했다. 2020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 제품화 및 실증사업’에 울산시, SKC 등 총 18개 기관과 손을 맞잡고 상용화를 위한 기술 이전을 마쳤고,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야자 껍데기, 볏짚, 억새 등 자연계 소재를 원재료로 만든 생분해성 플라스틱은 10년이면 썩어 자원화가 됩니다. 연구 과정에서 가속화 테스트를 통해 흙에 매립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58℃의 고온에서 미생물에 의해 6개월 안에 분해되는 것을 확인했죠. 지금은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컵, 빨대, 수저, 포크 등을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쓰레기봉투에 담아 기존 쓰레기 매립장 한 곳에 흙을 최적화한 실험장을 만들어 분해 결과를 지켜보는 베타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연구팀은 울산시와 관내 축구장의 협조를 얻어 경기가 있는 날을 ‘바이오 플라스틱 데이’로 정하고 생분해성 플라스틱으로 만든 쓰레기봉투와 컵, 포크, 빨대 등이 든 패키지를 업장에 제공, 관람객들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경기 후 이를 회수해 매립지에 묻고 분해 결과를 측정하는 실증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것이다. 시민들에게 생분해성 플라스틱에 대해 알리는 한편, 자신들이 사용한 플라스틱이 ‘썩는 것’을 확인한다면 큰 공감대를 얻으리라는 판단에서다.
“향후 10년 이상의 미래지향적인 연구를 해보려고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해 왔는데 저희 팀 박사님들과 얘기하는 과정에서 ‘당장 내년의 문제들도 해결 못하는데 10년 후의 문제를 어떻게 장담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이르렀죠. 우리가 연구한 것들이 어쩌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한 번 해보자라는 심플한 생각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 연구를 시작한 거예요. 연구자들의 생각의 전환을 불러왔던 게 뭐냐면, 쓰레기봉투를 만들어 분해하는 것도 알아야 하니까 분해 매커니즘을 공부하게 되고,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일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니 다양한 공부들을 해나가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올해 생분해 마스크 필터 개발도 완료할 수 있었습니다.”

플라스틱, 어떻게 다시 회수할 수 있을까

황성연 센터장은 쓰레기 매립장에 진행 중인 베타 프로젝트처럼 학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토양분해 테스트를 진행하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실험실을 넘어 한 도시를, 전 국토를 대상으로 필드 테스트를 하면서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필요성과 효과를 알리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꼭 말씀드리고 싶은 건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모든 폐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플라스틱을 안 쓰는 게 제일 중요하고요, 다 쓰고 난 플라스틱을 재활용(Recycling), 재사용(Reuse)해 쓸 수 있을 때까지 오래 쓰는 게 그다음입니다. 업사이클링(Up-cycling)을 통한 ‘새활용’을 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플라스틱을 써야 할 때는 석유계 플라스틱의 대체소재인 바이오 플라스틱을 써서 환경문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게 플라스틱의 올바른 사용법이라 말씀 드리고 싶어요.”
황성연 센터장은 앞으로 생분해성 플라스틱이 상용화와 양산화를 거쳐 일상에 유입된다면 이를 별도 배출하고 분리수거 하는 정책 또한 체계적으로 수립, 별도 매립지에서 이를 비료화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 생분해성 플라스틱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이라 강조했다. 그는 요즘 기업경영의 화두인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플라스틱 원료를 만들고 생산해 소비자에게 유통되기까지, 그리고 만들고 사용한 플라스틱을 기업과 소비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어떻게 회수할 것인가까지 설계하는 것이 ESG의 기본입니다. ESG를 근간으로 원료 만드는 분들은 친환경적으로 원료 만드는 법을, 생산자들은 생산 과정에서 탄소를 적게 발생시키는 법을, 유통업자들은 폐플라스틱 회수 시스템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법을, 소비자는 그러한 의무를 가지고 다시 활용할 수 있게 전달하는 ‘순환구조’로 바뀔 때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라는 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진행 중인 생분해성 플라스틱 실증화 사업과 관련해 3~5년 안에 가시적 성과를 내고 싶고, 장기적으로 근본적인 플라스틱 분해에 대해 더 깊게 들여다 볼 계획이라는 황성연 센터장.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일이 나와 우리 아이들 그리고 미래 세대가 살아갈 이 나라와 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자긍심으로 달려왔다”라는 그는 지난한 연구 과정 속에서 목표로 했던 소재 개발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경험들이 다음 연구를 하게 하는 힘이었다고 고백한다.
연구뿐만 아니라 강연, 세미나 등에 참석해 바이오 플라스틱의 필요성과 플라스틱 문제에 관한 대안들을 솔직 담백하게 전달하고 있는 황성연 센터장은 자신의 뒤를 이어 바이오 플라스틱을 연구할 3세대, 3.5세대 연구자들이 더 좋은 결과에 이를 수 있도록 지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선배 연구자로서의 역할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