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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기억하는
‘먹는 물’- 글 정현수 머니투데이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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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의 조각은 오감(五感)과 닿아 있다. 1990년대 유난히 무더웠던 한여름, 냉장고 한쪽은 늘 유리병의 차지였다. 노란색 오렌지 주스가 담겼던 유리병은 보리차에 제 공간을 내주었다. 유리병을 감싸던 차가운 물기의 감각, 뚜껑을 열었을 때 경쾌하게 들리던 '뻥'하는 소리, 무더위를 식혀준 보리차 특유의 향과 맛. 요즘 아이들은 "더운데 왜 보리차를 마셔요"라고 되묻겠지만, 그 시절 여름은 델몬트 유리병을 매개로 기억의 공간을 채운다.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국민 물병을 기억하시나요?
가정에 하나씩 있던 '국민 물병'은 1990년대를 정점으로 점차 자리를 잃어갔다. 극히 낮은 회수율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 논리가 더 컸다. 생수, 법적 용어로 '먹는 샘물'의 역사가 이를 뒷받침한다. 정부는 1974년 생수의 옛 법적 용어인 '보존음료수'를 허가업종으로 지정한다. 이듬해에는 보존음료수 제조업을 수출용으로만 허가했다. 1976년 다이아몬드정수라는 곳이 처음 허가를 받았다.
정부는 생수의 전면적인 판매가 수돗물에 대한 불신을 조장한다고 판단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수돗물에 보리차 등을 넣어 끓여 먹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페놀 유출 사건 등을 거치며 생수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높아진 수요에 따라 무허가 생수업체가 우후죽순 생겼다. 업체들은 생수의 국내 시판을 금지한 정부 정책을 두고 위헌 소송에 나섰다. 대법원은 1994년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이유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페트병의 편리함은 유리병의 자리를 뺏었다
대법원판결 이후 생수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렸다. 초기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생수는 점차 시장을 장악했다. 정부는 초창기 생수 용기로 유리병을 권장했다고 한다. 당시 생수 주무 부처가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에서 환경부로 넘어온 것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결정이다. 하지만 운반비 등이 만만치 않아 결국 유리병과 페트병을 같이 사용하도록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페트병의 편리함은 유리병의 자리를 빼앗았다.
'국민 물병' 역할을 했던 델몬트 유리병이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생수의 보편화, 정수기 시장의 확대는 먹는 물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꿨다. “누가 물을 돈 내고 사 먹어”라는 말은 옛이야기가 됐다. 끓여먹던 물은 이제 사먹는 물, 혹은 정수해서 먹는 물로 대체됐다. 대형마트에서 페트병에 담긴 생수를 카트에 담는 모습은 익숙한 장면이 됐다. 환경부에 따르면 먹는 샘물 제조업 허가업체만 61개에 이른다. 생수 시장은 1조 원을 넘어섰다.
변화의 기로에 선 페트병 그리고 생수
페트병 생수는 최근 다시 변화의 기로에 섰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25일부터 아파트 등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를 시행 중이다. 투명페트병은 재활용이 쉽다. 아파트 분리수거함에는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을 위한 공간이 별도로 마련됐다. 올해 12월 25일에는 투명페트병 분리배출제 대상이 단독주택으로 확대된다. 투명페트병을 분리배출하려면 페트병에 부착된 상표띠(라벨)를 떼야 한다. 하지만 아직도 상표띠가 그대로 부착된 페트병이 수거함에 그대로 들어가고 있다.
페트병을 가장 많이 활용하는 생수업체들도 조금씩 변화에 반응하고 있다. 상표띠가 없는 생수, 이른바 '라벨프리' 페트병이 등장하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다. 소비자들의 호평도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라벨프리 페트병이 대세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상표띠가 사라진 페트병만 남았을 때, 어른이 된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라떼는 말이야, 생수 페트병에 상표띠가 있었어”. 기분 좋은 상상으로만 그치지 않고 현실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