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 자연과 가깝게
    좀 더 가깝게

    한복 디자이너·보자기 아티스트 이효재

    • 이경희
    • 사진 김준후

    음성안내

  • 보자기로 예술을 했다. 자연스럽고 슴슴한 요리와 손끝 여문 살림 솜씨는 세간의 주목과 관심을 한껏 받았다. 배우 배용준 씨와 책을 내면서 일본에까지 그를 추종하는 팬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요즘은 뭐하고 지내지?”라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이효재 선생. 그를 찾아 청주시 초정행궁으로 내려가 보았다.
초정 홍보대사로 일해요

초정행궁에서 만난 이효재 선생은 푸근하고 여유가 넘쳐보였다. “내가 환갑이 지나서 그래요. 할머니가 됐잖아”라며 까르르 웃는 이효재 선생. 그래도 웃는 모습에서 슬쩍 소녀같은 얼굴이 보인다.
서울 성북동이 아니라 청주시 초정행궁 안쪽에서 만난 그는 잠시도 쉬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빨간 실로 매듭을 만들어 팔찌도 만들고 마스크 스트랩도 만든다.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한다.
“저는 몰랐는데 초정약수가 세계 3대 광천수 중 하나래요. 세종대왕이 눈병이 나서 이곳으로 행차해 청정약수로 눈을 치료한 기록이 있는데 그때 그 우물터를 기준으로 초정행궁이 새롭게 문을 열었어요. 작년 6월에 문을 열었는데, 저는 지금 초정 홍보대사로 일하고 있거든요. 초정약수를 알리는 데 내가 좋은 거름이 됐으면 좋겠다, 쓰임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매주 토요일이면 이곳 행궁에서 ‘효재와 함께하는 보자기 강의’을 열고 있습니다. 아주 행복하게 지내는 중이에요.”
효재 선생이 손놀림만큼이나 바지런하게 초정행궁에 드나드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는 요즘 오촌이도를 실행중이다. 닷새는 지방에 있고 이틀은 도시에 머무는 삶이다. 부지런히 지역과 도시를 오가는 삶이 고단할 법도 한데 “다 좋아요. 불만이 없어요. 지금이 중요하니까. 남과 비교도 안 하고 늘 일거리를 찾으니까 그냥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방 여기저기에 보물단지처럼 놓인 보자기 꾸러미를 보면서 효재 선생에게 “요즘 보자기가 갑자기 확 뜬 느낌이다”라고 말을 꺼내자 알밤을 콩, 맞았다(물론 진짜 맞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갑자기가 아니예요. 방탄소년단이 갑자기 떴나요? 그전에 싸이가 있었고 박진영 씨도 시도를 했었죠. K-푸드도 유학생들의 잡채, 김밥부터 시작됐어요. 동창회 가서 성공한 사람보면 저 자식 출세했잖아, 하는데 그건 그 사람의 십 년 전을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지금 보자기가 트렌드가 된 것도 마찬가지죠.”
효재 선생은 덧붙여 보자기가 뜬 게 ‘재난’이라고 했다. 집집마다 가득 쌓여있으니 보자기 씨앗을 뿌린 사람으로서 지구에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깊이 반성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보자기 재활용법에 대해서 더 열심히 지금 가르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괴산에서 200명을 가르쳤고 다음 달에는 울산에 내려가서 또 두 달 동안 보자기를 가르칠 예정이에요. 왕진 의사처럼 부르는 곳에는 열심히 다닐 거예요.”

행복한 삶, 건강한 마음을 위한 시간

인터뷰를 하는 내내 효재 선생을 둘러싸고 옹기종기 앉은 사람들은 참 많이도 웃었다. 그에게 보자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 역시 보자기를 잘 싸는 법을 익히다가 한바탕 웃고 간다고 초정행궁 담당자가 귀띔을 한다.
“보자기는 못 싸도 돼요. 보자기는 수단일 뿐이에요. 함께 모여서 행복해지고 편안해지는 것, 저는 그런 걸 가르쳐요. 보자기만 이쁘게 싸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삐뚤어지면 뭐해요. 보자기 강의이지만 사실은 삶을 얘기하는 철학 강의고 인문학 강의에요. 요즘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요? 없어요. 남 일에는 관심 없어요. 다들 알아서 잘 살고 있잖아요. 이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는 뭐하러 해요. 각자 열심히 살면 돼요.”
거침 없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말들, 마음속 어딘가 꽉 막힌 통로가 흐물흐물 초입부터 조금씩 녹아 내리는 느낌이다.
코로나19로 달라진 삶을 이야기하느라 저마다 법석이지만 효재 선생에게 지금 이 모든 것은 그저 예사롭고 평이한 시간들이다. 자신은 원래부터 재택근무자였고 달라진 것이 없는데 사람들이 집에 갇혀 시간을 보내면서 다시 자신을 찾으며 이야기를 청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자연에서 나는 것들로 밥상을 차리니 자연스럽게 면역과 건강이 깃드는 삶, 늘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니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몸.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다지 달라진 게 없는 효재 선생에게 그 비법을 묻는다면 아마도 이런 류의 대답이 돌아오리라.
폭염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가을이 다가오자 효재 선생은 지금 또 새로운 밥상을 차릴 궁리를 하고 있다.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괴는 것은 이곳 초정약수로 담그는 물김치다. 천연 탄산수로 담그는 물김치는 당연히 일반 물로 담그는 것과 그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며 이 가을의 별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미소 짓는다.
“가을에는 추석이 있잖아요. 명절이면 엄마는 늘 자식한테 더 먹으라고, 왜 그것밖에 안 먹냐고 옆에서 계속 음식을 권했고 저는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고 시키는 대로 다 먹다가 꼭 나중에 후회를 했어요. 너무 배가 부르니까요. 그럴 때는 스스로 자기를 위한 처방을 해야 해요. 가을을 앞두고 나오는 초록오이가 있거든요. 우둘투둘하고 색깔도 아주 진해요. 그 오이에 식초 넣고, 청양고추 한주먹 넣고, 소금이나 어육간장으로 간을 해서 무치는 거예요. 그걸 몇 개 집어먹으면 식초 때문에 속이 아주 개운해져요. 명절에 기름진 전을 먹어도 문제 없지요.”
효재 선생은 차도 즐겨 마신다. 자기한테 잘 맞는 차를 들고 다니면서 꼬박꼬박 챙겨 먹는데 이는 몸의 막힌 곳을 청소해주는 역할을 한다고. “요즘은 남원에서 나오는 고려시대 야생차 ‘고려단차’를 마셔요. 먹고 난 찌꺼기는 초 위에 태워서 방안 공기도 바꾸고요.”
무엇하나 허투루 버리는 것이 없는 그의 삶. 친환경이니 자연주의니 하는 누군가가 굳이 갖다 붙인 말이 아니어도 그는 이미 충분히 자연과 더없이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에요

효재 선생은 10년 뒤의 우리 삶을 두고 방독면을 쓰고 살게 될 거라고 했다. 이건 재앙도 뭣도 아닌, 그저 응답일 뿐이라고 했다. 메아리처럼 되돌아오고 인간은 또 거기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숙명을 갖고 살 거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답답해서 마스크를 못 쓰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은 마스크와 옷을 깔맞춤해서 멋지게 쓰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 염세주의자는 아니예요. 환경재단, 어린이재단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열심히 환경을 외치고 교육을 하잖아요. 아이들에게 희망을 거는 거죠. 미래는 달라지지 않고 망가지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디게 그 속도를 줄일 수 있다면 전 그걸로 족해요.”
효재 선생은 자신을 두고 오늘을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일 당장 이 집에 못 올 수도 있기 때문에 늘 깨끗하게 해놓는다고 했다. 사람은 내일 죽기 때문에 늘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읊조리듯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주장보다 강력한 힘이 실려 있다.
“생활 속에서 환경을 살리는 방법이요? 일상에서 너무 고마운 전기와 물을 소중히 하는 거죠. 양치할 때 물을 안 틀어놓는다거나, 불필요한 전기를 쓰지 않도록 한다거나….”
이름 알려진 예술가로서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은 아니더라도 그는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전 닥치는대로 살아요. 인생이 계획한대로 되나요? 지금 이 자리에서 최상, 최선을 하면 돼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방에 다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