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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기술의 보고
‘자연’
그리고 ‘생태모방’- 글 주문정 지디넷코리아 부국장
- * 이 기사의 내용은 한국환경공단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아프리카 사막에 사는 딱정벌레. 더운 낮에는 땅속에 있다가 서늘한 밤에 나와 활동하는 이 딱정벌레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등 껍데기에 있는 촘촘한 돌기를 이용해 바람에 실려 온 물방울을 잡아뒀다가 나중에 먹는다고 한다. 캐나다의 자선단체인 포그케스트는 딱정벌레 등 껍데기를 연구해 서늘한 바람 속 물방울을 모아 물을 만드는 수분포집기를 개발, 저개발 국가를 지원하고 있다.
# 2013년 5월 2일자 네이처 학술지에는 ‘절지동물에서 영감을 얻은 디지털카메라 설계’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 존 로저스 교수와 여러 분야 연구진이 모인 학제간 연구팀이 잠자리·벌·사마귀 등 곤충이 가진 시각기관을 모방해 설계한 디지털카메라 이야기다. 이 카메라는 무한대에 가까운 피사계 심도와 160도 광각 촬영이 가능하다. 곤충 눈과 비슷하게 180개의 반구형 초소형 렌즈를 붙인 디지털카메라는 피사체의 독특한 각도를 포착할 수 있다.생태모방 기술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끄는 혁신 성장동력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생물의 진화과정 아이디어가 산업요소로
생태모방(Biomimicry)은 생명을 뜻하는 ‘bios’와 모방이나 흉내를 의미하는 ‘mimesis’라는 두 개의 그리스 단어에서 따왔다.
생태모방 기술은 식물이나 동물·곤충이 수십억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환경에 최적화한 구조나 재질, 기능, 운동성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생활이나 산업에 필요한 요소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다. 여러 가지 생물 특징을 연구해 사람이 더욱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1955년 스위스에서 식물 도꼬마리 가시를 모방한 벨크로(찍찍이)가 대표적인 산업화 사례다. 벨크로는 2019년에 17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상어 피부 돌기 구조를 모방한 전신 수영복, 새나 풍뎅이 비행 모습이나 날개를 모방한 비행기와 드론, 연잎을 보고 만든 방수복, 솔방울을 모방한 테니스복, 모기 침 구조를 모방한 무통증 주삿바늘 등 생태모방 기술의 산업화 사례는 끝이 없다.
지난해 미국 경제성 분석 전문기관 FBEI가 내놓은 용역보고서 ‘자연과 경제의 연계:대한민국의 새로운 방향성’에는 한국은 2035년까지 생태모방 산업 관련 분야에서 76조 원 규모의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 65만 개를 창출할 것으로 예측했다. 독일이나 미국·프랑스 등은 생태모방 기술을 미래기술로 선정하고 정부-민간 협력 중심으로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생태모방지식 공유 플랫폼 구축 앞둬
국내에서는 2017년 환경부가 ‘생태모방 기술개발’을 혁신성장 선도 사업으로 선정했고 2019년부터 ‘생태모방기반 환경오염관리 기술 연구개발(R&D)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한국기계연구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서울대 공대, 포스텍 등 공학 분야 중심으로 생물 특성 모방기계, 재료, 로봇 연구 등을 개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생태모방 기술 산업화 사례로는 2015년 LG전자 연구팀과 서울대 연구팀이 ‘혹등고래 지느러미 혹 형상’과 ‘조개 표면의 홈 구조’를 모방해 개발한 소음저감·에너지 효율 높은 에어컨 실외기 팬이 있다. 국립생태원은 재료·기계 분야 등 생태모방 기술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동식물 14종(장수풍뎅이·왕사슴벌레·부처손·솔방울·까치 등)의 생태 조사와 원리분석을 추진하고 있다. 생태모방지식 공유 플랫폼도 구축한다. 국립생태원은 생태모방지식을 확보하고 수요자 요구에 맞춰 생태모방 원리를 추천하는 기술을 개발해 생태모방 사업 아이디어 추천, 전문가 네트워크, 사업화 연계, 교육 및 홍보 등을 지원할 전방위 서비스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2023년에 구축을 완료해 2024년부터 대국민 서비스를 시작한다. 김기동 국립생태원 생태정보연구실장은 “생태모방 기술이 하나 나오기까지 자연 모방 연구 10년, 상용화 11년 등 통상 21년이 소요되는데 점차 시간을 줄이고 있다”며 “생태모방 기술을 연구해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10월에는 환경부·국립생태원·경상북도·전라남도·경산시·한국기계연구원 등이 6자 협력을 체결, 생태모방 기술 개발 촉진에 나섰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생태모방기술
16세기 프랑스 철학자 미셸 드 몽테뉴는 “자연은 친절한 안내자다. 현명하고 공정하며 상냥하다”라고 했다. 자연 속에는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생물이 특별한 능력을 이용해 살아가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가장 편리하게 잘 살 수 있도록 기능을 발전시키고 변화해 온 덕분이다. 반면에, 인간은 지난 수백 년 동안 기술 발전을 앞세워 편리한 삶을 추구했다. 지나친 개발은 환경 파괴와 오염을 일으켜 기후위기로 이어졌다. 미래기술 개발은 환경까지 생각해야 한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생물체에서 배우는 생태모방기술에 좀 더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