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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맛과 향을 탐하다

    • 글, 사진 김담 작가

음성안내

저물녘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면 해종일 바깥에서 헤덤벼치며 놀던 어린 우리들은 제비 새끼처럼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물에 젖은 신발을 말리며 불을 쬐었다. 한쪽 솥에서는 소여물이 끓고 있었고, 또 다른 솥에는 저녁쌀을 안쳐야 했으나 때때로 저녁이 늦어질라치면 입맷거리로 알불에 고구마를 구웠다. 채 익지도 않은 고구마를 꺼내 후후 소리를 내며 껍질을 벗기기도 전에 입으로 가져가 입천장을 데어 쩔쩔매면서도 또다시 후후, 그러면서도 잇달아 달곰하면서 뜨거운 고구마를 베어 무느라고 바빠났다. 머릿속이 환해지고 후출했던 배 속이 그들먹해졌다.

사각형으로 된 기름통을 잘라 만든 화로에 올려놓은 오목투가리에서는 볶작장이 끓었다. 어쩐 일인지 부엌에는 어머니보다 할머니가 계실 때가 많았다. 할머니는 언제나 우리 편이었으므로 부엌비(빗자루)를 깔고 아궁이 앞에 앉아 있어도 발길에 뒤챈다고 혼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숯내에 취해 졸음이라도 쏟아질라치면 외양간에서는 황소가 영각을 켰고, 돼지우리에서는 돼지들이 꿀꿀거렸으며 닭장에서는 수탉이 홰를 쳤다. 그 사이사이 마당의 감나무 우듬지(맨 꼭대기)에서는 마지막 남은 까치밥을 다투며 저녁 까치가 울었으며 처마 밑으로 돌아가는 참새떼들이 시끌시끌했으므로 졸음은 저만치 달아났다.

먼 산 주름 끝에 이내가 내리고 코끝을 스치는 바람결이 알싸해질 무렵 이른 봄 떠났던 말똥가리가 돌아왔다. 전깃줄과 논배미를 오르락내리락하던 방울새떼는 아우성이었고, 작벼리 갈대숲에 둥지를 틀었던 개개비는 떠나왔던 저 먼 곳으로 돌아갔다. 꾀꼬리와 파랑새, 물총새와 호반새 그리고 검은등뻐꾸기와 휘파람새들은 인사도 없이 마을에서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마을 하늘에는 기러기 떼가 행렬을 이루며 날았다. 바닷가에선 산란기를 맞은 새치(임연수어)를 숯불에 구웠고 강가에서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오는 연어를 구경했으며 냇가에서는 추어탕을 끓였다.

하늘은 맑고 투명해지고 눅진눅진하던 바람결은 한결 산뜻해졌다. 산마루와 골짜기에서 시작된 단풍은 이삼일 불같이 타오르더니 한순간 숙지고 말았다. 길래 이어진 장마로 가을 김장밭에 무와 배추는 뿌리가 무솔았으며 들깨 밭에 꺾어 놓은 깻단은 울멍줄멍 무덤처럼 서서 마당질할 날을 기다렸다. 갈품과 새품이 바람에 하느작거리는 사이 산 기스락은 물론 논두렁 냇둑 수풀 사이에는 꽃등처럼 환한 샛노란 산국이 벌들을 불러 모았으며 바닷가 바위짬에는 보랏빛 해국이 파도소리에 흔들렸다. 숲정이에는 지르되게 핀 희고 불그스름한 빛깔의 구절초와 자줏빛의 산부추 꽃이 생생했다.

볏가을한 논배미에는 거두지 못한 볏짚이 늦가을 비에 젖어들고 있었다. 어릴 때는 가을걷이를 하고 빈 들이 되면 잡목숲을 지나 멀리 냇가 운동장까지 가지 않고 집 옆 논배미에서 놀았다. 소 먹이용으로 쌓아 놓은 볏짚 낟가리에서 숨바꼭질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때때로 돼지 오줌보로 축구도 했고, 규칙도 모르는 야구도 했다. 그러다가 배가 고파지면 콩서리를 해서 볏짚에 구웠다.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연기 냄새도 냄새려니와 콩꼬투리가 벌어지면서 콩알이 사방으로 튀어 안절부절못하면서도 누렇게 익어가는 콩알을 쫓느라 눈에 힘이 들어갔다. 손과 얼굴에 검댕이 묻어도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집에서는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때문에라도 맷돌에 콩을 갈아서 가마솥에 콩탕도 끓이고, 두부도 만들었다. 물에 불린 콩을 맷돌구멍에 넣고 맷손을 돌릴 때면 비릿한 콩 비린내가 났고, 가마솥에 불을 지필 때면 냉과리와 함께 냇내가 났다. 그렇지만 식구들이 두리반에 둘러앉아 콩탕을 먹을 때면 서로들 더 먹으려고 조바심쳤다. 아무런 냄새도 없을 것 같은 콩탕이었지만 보글보글 끓어오를 때는 눈으로도 먹고 소리로도 먹었으며 무엇보다 그 엇구뜰한 맛과 향은 숟가락질을 바쁘게 했다. 두드러진 것이 없어 보이는 콩도 할머니의 손을 거치면 감칠맛이 도는 음식 이 되었다. 특히 늦가을에 항아리에 쟁여 놓는 고욤(고욤나무 열매)은 별미였다.

이제는 논배미에 볏짚을 쌓아 올려 낟가리를 만들지도 않았을 뿐더러 가을걷이한 논배미에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도, 콩서리를 하는 아이도 없었다. 논둑에 저 홀로 자라는 고욤나무에는 직박구리들 먹이 터가 되고 말았다. 부엌 아궁이에서 맡던 불내도, 화로에서 끓던 볶작장 냄새도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엇이 되고 말았다. 사라지고 잊힌다는 것은 그리하여 더욱 그립고 애틋한 그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