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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억의 맛에 잠기다

    • 글, 사진 김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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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문을 통해 장맛비를 구경하다 지치면 구팡(뜰)으로 나와 지시랑물(낙숫물)을 손으로 받으며 장난했다. 어른들은 손에 사마귀가 생긴다고 질색했지만, 어린 우리들에게 처마 끝에서 가지런히 떨어지는 지시랑물은 이상한 감동이었다. 지시랑물 너머는 마치 결계한 곳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처럼 여겨져 신발을 신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연노랑 물레나물 꽃이 시들며 열매가 되고, 주황빛 참나리가 왕성하게 빛을 뽐내는 때, 넓고 넓은 호숫가 한구석에는 말발굽 같은 이파리에 밤이면 잠을 자는 각시수련이 도탑고 순정한 흰 꽃을, 무리지어 피고 지는 순채는 검자줏빛 꽃을, 어쩌다 운이 좋으면 꾀꼬리 깃털 빛과 같은 진노랑 꽃을 피우는 통발도 만날 수 있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면 이르는 큰 산에는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는 송이와 능이, 달걀버섯과 꾀꼬리버섯 그리고 ‘밤버섯’과 ‘곰버섯’, 싸리버섯이 땅 밑에서 들썩들썩했다.

어린 우리들이 도랑을 들쑤시며 돌아치는 사이, 할머니는 감자가루 익반죽에 강낭콩으로 소를 박은 감자떡을 빚었다. 거무튀튀한 감자떡은 지난해 감자를 캔 뒤 생긴 지스러기들을 모아 여름내 항아리에서 푹 썩힌 뒤 ‘얼개미(체)’에 걸러 감자 껍질은 버리고 가라앉은 앙금을 몇날 며칠 아침저녁 물을 갈아주면서 썩은 내를 우려냈다. 또다시 몇날 며칠 가을 맑은 볕에 말려서 광목 자루에 꽁꽁 싸서 항아리에 보관했던 감자녹말 가루로 빚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감자 ‘갈기(가루)’를 느루 먹는 일로 고심했지만, 매미 울음소리가 드세지고, 삶은 옥수수와 찐 감자가 터분해질 무렵 촛국과 함께 먹는 감자떡은 별미였다.

하지 무렵부터 캐기 시작한 감자는 찌거나 삶으면 포슬포슬하여 맨입으로 먹기에는 부담스러웠고, 그러면 어른들은 깡통을 펴서 만든 강판에 깎은 감자를 갈았다. 화로에 소댕을 얹고 무로 만든 기름솔에 들기름을 적셔서 소댕에 썩썩 바른 뒤 ‘감자적’을 부쳤다. 지금은 감자부침개라고 부르지만 감자적이라고 해야 그 고소하고 달보드레하며 살강살강 씹히는 감자부침개의 전모를 느낄 수 있었다. 거기에서 조금 더 손을 보태면 강판에 갈아서 가라앉힌 앙금으로 새알을 빚어 간장물에 감자옹심이를 만들었다. 더운 날 더운 음식이었지만 여럿이 두리반에 둘러앉아 하하, 호호하면서 먹는 음식은 유별할 수밖에 없었다.

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서 온 감자는 우리나라에는 19세기 만주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양의 씨감자를 생산하는 곳은 강원도이지만 이제는 하지감자가 나오기 전 제주섬 감자가 먼저 시중에 나왔다. 해 질 녘이면 어른들 닦달에 쫓겨 고무줄놀이도, 공기놀이도 미룬 채 둥구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감자 껍질을 벗겨야 했던 시절은 간 데 없었지만, 감자는 감저(甘藷)였다.

강판에 깎은 감자를 갈아서 ‘증갈기(앙금)’가 가라앉는 동안 베보자기에 무거리의 물기를 짠 뒤 무쇠솥에 깎은 감자를 삶았다. 앙금과 무거리를 섞어 마치 수제비를 하듯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 삶고 있던 감자와 함께 섞어 만드는 ‘감자투세’, 호박과 팥 등을 섞어 삶아 만드는 감자범벅, 무엇보다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강낭콩 등을 섞어 만든 감자시루떡은 입이 달았다. 감자는 여전히 튀김도, 볶음도 되었고 샐러드도 되었으며 한여름 캠핑장에 구워 먹는 감자는 하늘의 별빛과 숲속의 바람결, 사람의 숨결이 어우러져 한 편의 이야기가 되었다.

바람결이 가벼워지고 볕이 투명해지면 논들에 벼는 우꾼우꾼 익어갔다. 감자 캔 자리에는 들깨 모종이 끝났고, 옥수수 섶은 외양간 소여물로 여투어두었고, 어른들은 빨갛게 익어가는 고추를 땄다. 또다시 늦가을 장마가 시작되면 할머니는 내를 건넜다.